닛산 370Z
‘닛산 370Z’ 타보니
‘페어레이디(아름다운 여성)다웠다.’
페어레이디는 일본 자동차 업체 닛산이 1969년 미국 시장에 내놓은 2인승 스포츠카 ‘Z시리즈’의 별명이다. 전면부는 길고 후면부는 짧은 ‘롱 노즈 쇼트 데크’ 스타일에 부메랑 모양의 헤드라이트까지 더한 6세대 페어레이디 ‘370Z’(사진)는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인상을 줬다. 하지만 매끄럽게 쭉 빠진 곡선미 때문인지 근육질의 남성보다는 관능적이고 도도한 페어레이디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5일, 370Z에 몸을 싣고 서울에서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로 내달렸다. 놀러갈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는지, 도로는 평소 토요일과는 달리 한산했다. 그 도로 위로 빨간색의 날렵한 370Z가 ‘왜앵~’ 앙칼진 소리를 내며 다른 차들을 앞질러 갔다. 거침없는 속도감에 밀리듯 버킷시트 안으로 몸이 폭 잠기자 빨간 드레스를 입은 글래머 미녀에 빙의된 듯 절로 신이 났다.
실내 디자인 역시 여성적 감성이 물씬했다. 화사한 오렌지색 버킷시트가 눈길을 사로잡고, 유온계·전압계·시계 등을 따로 떼내 비행기 계기판 모양으로 중앙에 배치한 것도 장식적 요소로 손색이 없었다. 평균 연비 등을 알려주는 다기능 정보계기판과 아르피엠(RPM) 속도계 등 운전석 쪽 계기판엔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정보만 표시하고 있어 보기가 쉬웠다. 또 당최 무슨 기능을 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버튼들을 주욱 늘어놓기보단 최소화한 것도 미덕으로 보였다. 2인승 스포츠카의 좁은 공간을 살뜰하게 사용한 점도 돋보였다. 대시보드가 아닌 문쪽에 달린 송풍구, 좌석을 젖히면 드러나는 작은 수납공간 등이 대표적이다. 골프백 2개까지 넣을 수 있는 트렁크(235ℓ) 공간도 비좁은 스포츠카의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 다만, 안락한 버킷시트는 덩치가 있는 남성들에겐 좀 비좁을 듯했다.
페어레이디는 알루미늄 비중은 늘리고 강철 사용을 줄여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하지만 ‘280’까지 표시된 속도계가 보여주듯 기운이 달리진 않는다. 3.7ℓ V6엔진이 333마력에 최대토크 37㎏·m의 힘을 발휘해, 가속페달을 밟으면 밟는 대로 속도가 올라간다. 닛산이 포르셰를 따라잡기로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스포츠카답다. 초기 시동에서 핸들은 좀 무거운 느낌이지만, 고속 주행 시엔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급커브 구간에서 100㎞/h 정도로 통과해도 쏠림 현상도 크지 않았다. ‘스포츠카가 다 그렇지’ 싶다가도 과속방지턱을 넘어설 때 엉덩이로 전해지는 충격은 그리 반가운 느낌은 아니다.
가격은 5790만원. 국산 대형차 값에 버금가는 가격이지만 ‘굴러다니는 아파트’로 불리는 슈퍼카들에 비한다면야 ‘착한 가격’이다. 미국에선 ‘대중적인 스포츠카’로 자리매김했다지만 국내에선 지난해 말까지 289대만 팔렸으니 시선을 끄는 데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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