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일본업체와 경쟁 부담
납품단가 인하로 이어질까 우려
‘모듈부품 조달’로 생존여건 더 악화
납품단가 인하로 이어질까 우려
‘모듈부품 조달’로 생존여건 더 악화
현대·기아자동차의 부진한 실적 탓에 협력업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력사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협력업체들의 영업이익은 현대·기아차는 물론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보다 이미 큰 폭으로 떨어져 있어 걱정을 키운다.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로, 엔진 부품을 만드는 ㄱ사는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5% 줄었다. 차량 내장 부품을 만드는 ㄴ업체도 이번 분기 영업이익이 46.3%나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수억원가량의 흑자를 낸 변속기 부품 제조업체는 적자로 돌아섰다.
현대·기아차의 실적 악화가 협력업체들한테 더 큰 파장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와 국내 부품 시장의 경쟁 심화가 있다. 수직계열화된 회사가 비교적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해 수익을 내는 반면 다른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데, 생산량이 많을수록 이익이 나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자동차 산업 특성상 단가를 낮춰서라도 생산에 나서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거나 재무구조가 좋은 부품사들은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지만 현대·기아차 의존도가 클수록 영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 부품회사 관계자는 “경쟁 입찰을 통해 납품업체를 다시 선정하면 경쟁이 치열해 입찰 단가가 내려가는 효과가 있는데, 수출 비중 등이 높지 않다면 이런 영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고 했다. 특히 여러 부품들을 조립해 만드는 모듈부품 조달이 확대되면서 소규모 부품업체들의 생존 여건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현대파워텍 및 현대글로비스, 현대하이스코 등 자동차 산업 관련 현대차그룹 5개 계열사의 3분기 평균매출액이 4.0% 늘고, 영업이익은 5.1% 줄어드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부품 협력사들의 경영실적은 훨씬 나쁘다.
현대·기아차가 엔화 약세(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와 가격 경쟁에도 나서야 해 협력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협력사들의 경영상황 악화는 채용 등 국내 경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11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을 보면 자동차 관련 분야의 업황 지수(100을 넘을 때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전망)는 지난해 11월 98.4에서 이달 89.7로 떨어졌다. 2차 협력사의 한 관계자는 “당장 눈에 띄게 납품단가를 내리지는 못해도, 원자재값이 오르는 것을 반영하지 않거나 어음결제 기간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부담을 전가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장된 비교적 우량한 업체들의 실적이 나빠지는 상황이면 대다수 업체들은 더욱 어렵다고 볼 수 있다”며 “수직계열화로 비계열 회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불공정 거래까지 생기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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