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박한우 사장이 2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주최로 서울 서초구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진단과 대응' 간담회를 마친 후 통상임금 소송 선고를 앞둔 상황에 대한 심경을 언론에 밝히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제공
우리나라 완성차업체들과 부품업체들의 세계시장 경쟁력 하락 이유로 ‘연구개발(R&D) 부족’ 문제가 지목되자, 자동차업계가 “과도한 규제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경쟁업체들이 있는 다른 나라에서보다 환경·안전·소비자보호 규제가 많고, 해고나 파견사용 등을 어렵게 한 노동법에 묶여 연구개발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22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 호텔에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주도로 열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진단과 대응’ 간담회 참석자들은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로 연구개발을 비롯한 투자가 부족해져 우리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국내 완성차 5개 업체 모임이며, 이날 간담회에는 현대자동차 정진행 사장, 기아자동차 박한우 사장, 르노삼성자동차 황은영 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협회가 이날 내놓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완성차업체의 연구개발 투자 능력은 독일·미국·일본 업체들에 견주어 한참 부족하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34억달러(4조원)를 연구개발에 썼는데, 이는 독일 폴크스바겐(151억달러)의 4분의 1, 일본 도요타(95억달러)의 5분의 2 수준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보면, 현대·기아차는 2.7%, 폴크스바겐은 6.3%, 지엠(GM) 4.9%, 도요타 3.8%였다. 협회는 이런 연구개발 부족으로 “고급차와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우리 완성차업체들의 기술경쟁력이 해외업체들에 견줘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는 이처럼 연구개발에 소홀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화살을 노조와 정부에 돌렸다. 협회는 “지난해 기준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이 5개 완성차업체 평균 12%를 넘어섰다”며 “도요타는 7.8%, 폴크스바겐은 9.5%”라고 주장했다. 또 “전환배치·해고·파견이 노조의 반대와 노동법 규제로 불가능해 생산 유연성이 떨어진다”며 이런 “경쟁력 약화로 한국의 국가별 자동차 생산 순위도는 지난해 인도에 추월당해 6위로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김용근 협회장은 “우리 환경규제는 세계적 수준”이라며 “자동차업체들의 위상이나 국민들의 지불수준을 볼 때 환경규제 수준이 과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디젤차의 배기가스 배출 규제 등을 키워가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김 회장은 “지나친 규제를 감당할 수 없으면 핵심기술을 국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가격 인상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도 했다.
박광식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우리 자동차산업이 크려면 노사관계나 각종 규제가 글로벌 스탠다드(국제기준)에 맞춰져야 한다”며 “정부가 정책 지원을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은영 르노삼성 본부장은 “여러 가지로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연구개발이란 것도 여건이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은 개발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은 통상임금 1심 재판 선고를 앞두고 "기아차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느냐”며 울화를 쏟아내기도 했다. 박 사장은 “제가 통상임금 소송 당사자라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면서도 “기아차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돈(임금)도 다 줬고 국가 경제에 많이 이바지했다”고 주장했다. 통상임금 범위를 좁게 해석했던 정부 지침에 따라 임금 지급을 해온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3년 이런 정부의 행정해석과 달리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후 많은 생산 현장에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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