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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동차

지구촌 가장 싼 차 ‘타타 나노’, 꿈은 달린다

등록 2018-01-01 11:48수정 2018-01-01 16:31

인도 최대 재벌 타타, 10년 전 250만원 국민차 개발
누적 적자 1조원…퇴출 않고 전기차로 돌파구 모색
2008년 1월 델리자동차엑스포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 ‘타타 나노’를 소개하는 라탄 타타 회장. 유튜브 갈무리
2008년 1월 델리자동차엑스포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 ‘타타 나노’를 소개하는 라탄 타타 회장. 유튜브 갈무리

“약속은 약속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8년 1월10일 뉴델리에서 열린 제9회 자동차엑스포 무대에 나타난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Ratan Tata) 회장은 독자개발한 소형 승용차 ‘타타 나노’(Tata nano)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이 자동차의 탄생 배경을 한마디로 압축한 이 말은 타타그룹의 경영철학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타타는 인구 13억에 육박하는 인도의 최대 재벌이다. 한국인들에겐 2004년 대우상용차를 인수한 인도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도 정치의 상징인물이 간디라면 인도 경제의 상징적 인물은 이 그룹의 창업자 잠셋지 타타(Jamsetji Tata, 1839~1904)다. 150년 전인 1868년에 출범해 오늘날 인도 산업의 기초를 닦은 기업이다. 2016~2017년 기준 매출이 1004억달러(108조원), 종업원 수는 70만명에 육박한다. 자동차, 전력, 화학, 철강, 호텔, 통신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10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앞에서 본 타타 나노. 위키피디아
앞에서 본 타타 나노. 위키피디아

인도 최초 사업 줄줄이…110년 전 이미 노동복지 실현

영국 식민지라는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한 잠셋지 타타는 단순한 기업가에 만족하지 않았다. 민족자립 정신을 바탕으로 철강사업, 수력발전 건설, 교육기관 설립 등을 통해 인도의 힘을 키우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정신의 영향으로 타타엔 인도 최초로 시작한 사업이 많다. 철강, 발전 외에도 럭셔리호텔, 소프트웨어, 항공, 자동차, 은행, 시멘트 등이 타타가 첫 테이프를 끊은 사업 영역이다.

 개척정신과 함께 타타그룹을 지탱해온 경영철학은 이익보다 사람을 앞세우는 ‘신뢰경영’이다. 1907년 타타 스틸은 이미 선진국을 압도하는 노동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하루 8시간 근무, 무료 의료 지원, 복지부서 설립, 노동자 재해보상제, 출산 급여, 이윤 공유 보너스, 퇴직금 등이 이에 해당한다. 타타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밝힌 회사의 사명은 이렇다. “신뢰 리더십‘을 기반으로 하는 장기적인 이해관계자 가치 창출을 통해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타타가 1932년 일찌감치 인도 최대 자선 기관 ’타타 트러스트‘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타타의 모든 계열사들은 이익의 4%를 사회를 위해 내놓는다고 한다. 이런 경영방식은 타타 가문이 속해 있는 파시교의 뿌리깊은 박애주의 전통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파시교는 8세기에 박해를 피해 페르시아에서 남아시아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에 신자들의 후예들이 만든 공동체 집단이다.

라탄 타타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값싼 차 개발을 생각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라탄 타타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값싼 차 개발을 생각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이륜차 타는 4인 가족 보고 “저소득층 마이카” 약속

타타 회장이 이날 소개한 자동차 ’타타 나노‘는 ’지구상에서 가장 값싼 자동차‘라는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다. 거대한 재벌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그가 가장 값싼 차를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발표장의 녹화 영상에서 타타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 이야기는 몇년 전 이륜차를 타고 가는 가족을 보았을 때 시작됐습니다. 아빠는 스쿠터를 운전하고, 아빠 앞에는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뒤에는 아내가 아기를 안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가족을 위한 안전하고 저렴한 운송수단을 만들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안전 기준과 배출 규정을 충족하고 연료 효율이 높은 국민차를 만들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껏해야 스쿠터 2대를 붙이거나 불안전한 차를 내놓을 것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현재의 안전 기준과 법적 환경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그리고 이륜차보다 오염 수준을 낮춘 자동차를 공개합니다.”

 타타 나노가 겨냥한 고객층은 이륜차를 가질 여력은 있지만 차를 살 만한 여력은 없는 저소득층이었다. 이들에게 마이카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그는 차 가격 목표를 10만루피(2500달러, 250만원)로 정했다. 처음부터 10만루피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저렴한 자동차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10만루피를 언급한 것이 제목으로 뽑히자, 기왕이면 그에 맞추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타타자동차 공학연구센터(ERC) 엔지니어 500명이 4년간 개발 작업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나노는 길이 3미터, 무게 600kg의 4~5인승 소형 승용차다. 가격은 당시 가장 싼 차 마루티800(20만루피, 마루티 스즈키)의 절반에 불과했다.

 타타 나노가 첫 선을 보인 2008년은 공교롭게도 헨리 포드가 미국인들의 마이카 시대를 연 ’모델T‘를 내놓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포드와 마찬가지로 타타의 개발 목표 역시 저렴한 국민차였다. 해외 언론들도 나노의 등장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아우토반을 발명하고 파버누겐( Fahrvergnugen, 운전하는 즐거움)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독일의 언론 <슈피겔>은 나노를 폴크스바겐 비틀에 비유했다. 비틀이 독일이 서구를 위해 만든 국민차라면 나노는 인도가 개발도상국을 위해 만든 국민차라는 것이다.

나노의 운전석 부분, 차 뒤쪽 트렁크부분에 위치한 엔진, 너트가 3개뿐인 휠. 위키미디어 코먼스 등
나노의 운전석 부분, 차 뒤쪽 트렁크부분에 위치한 엔진, 너트가 3개뿐인 휠. 위키미디어 코먼스 등

절감 아이디어 총동원한 ’간디공학‘ 결정체

나노의 값을 파격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무엇보다 사양을 낮추는 것이 주효했다. 우선 크기를 축소했다. 제작비에서 비중이 큰 강판을 적게 쓰기 위해서다. 엔진도 4기통이 아닌 2기통 가솔린 엔진(624cc)을 썼다. 타이어도 동급의 다른 차보다 작고 가볍게 했다. 12인치 휠에는 3개의 너트만 있다. 차 내부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다. 에어백은 물론 라디오, 안개등, 히터, 에어컨도 뺐다. 사이드 미러는 운전석쪽에만 있다. 와이퍼도 하나다. 좌석도 운전석만 이동 가능하게 했다. 트렁크는 따로 없이 뒷좌석을 접어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개발과정에서 34개의 기술특허가 출원됐다.

 이렇게 해서 동급 마루티800보다 차체 길이는 7% 작으면서도 실내 공간은 20% 넓은 가족용 승용차를 단돈 10만루피에 출시할 수 있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총동원한 타타의 나노 제조기술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간디에 빗대 ’간디 공학‘(Gandhian engineering)이라 부르기도 했다. 연비는 리터당 23km에 최고 속력은 시속 105km. 물론 인도의 저렴한 인건비도 차량 가격을 낮추는 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당시 타타 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한 해 15만루피에 불과했다.

자료=위키피디아
자료=위키피디아

10년 동안 누적 판매 30만대 못미쳐…하루 2대 생산

타타는 나노가 자동차산업 판도를 바꿀 것으로 생각했다. 인도 도로 사정이 좋아지고 중산층이 늘어나면 연간 100만대는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간 25만대는 너끈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공장 부지를 둘러싸고 지역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진 것이다. 그 바람에 출시 시기가 1년 늦어졌다. 2009년 3월23일 뭄바이 타지마할호텔에서 열린 출시 행사에서 타타 회장은 다시 약속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언론들은 “개발도상국의 새로운 트렌드이자 혁신의 브랜드”(타임), “21세기 자동차의 새로운 종(種)”(뉴스위크), “인도인들의 염원을 압축한 차”(파이낸셜타임스)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판매 실적은 참담했다. 첫해 2만대에 이어, 다음해 3만대를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 3월 끝난 2017회계연도엔 판매량이 7591대에 그쳤다. 2017년 10월 현재 총 누적판매대수는 30만대에도 못미친다. 사이러스 미스트리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나노로 인한 누적 손실이 640억루피(약 1조원)에 이른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딜러들은 11월 이후 자동차 주문을 중단했다. 구자라트주에 있는 사난드 공장에선 하루에 2대만 생산할 뿐이다.

뭄바이에 있는 타타그룹 본사 ‘봄베이 하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뭄바이에 있는 타타그룹 본사 ‘봄베이 하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실패의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인도 중산층의 마음을 잡지 못한 탓이 크다. 사람들한테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수단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안락한 이동수단을 원했다. 싼 차로 따진다면 굳이 나노를 찾을 이유가 없다. 중고차를 사면 될 일이다. 차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차라는 이미지는 구매 의욕을 떨어뜨렸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나노는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가격도 꾸준히 올라 ’세상에서 가장 값싼 차‘라는 명성에 금이 갔다. 현재 가격은 20만루피를 훌쩍 넘는다.

 타타 나노의 운명은 이제 끝난 것일까? 타타 경영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타와 나노는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나노를 퇴출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타타그룹의 경영철학을 담고 있는 자동차라는 판단에서다.

2016년 2월 뉴델리에서 열린 제13회 자동차엑스포. 이 행사는 2년마다 열린다. 자동차엑스포 제공
2016년 2월 뉴델리에서 열린 제13회 자동차엑스포. 이 행사는 2년마다 열린다. 자동차엑스포 제공

다른 개발도상국 국민차 시장 진출 기회도

그렇다면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사람들의 변화한 취향과 강화된 안전기준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길이 있을까? 극심한 도시 대기오염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인도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추진 정책이 계기가 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40%로 높일 계획이다. 전기차 제작비에서 비중이 큰 배터리값을 정부가 보조해주면 정부, 소비자, 기업이 ’윈윈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부품을 절약한 나노의 제작 노하우가 부품 수가 적은 전기차에 통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능 강화 추세에 맞춰 인도의 우수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잘 활용하면 차의 안전도와 안락감을 동시에 높일 수도 있다. 타타의 주력사인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는 세계 톱10에 드는 인도 최대의 소프트웨어 개발 및 서비스 업체이다.

 최근 긍정적인 조짐이 나타났다. 자옘 자동차(Jayem Automotives)와의 합작 아래 2017년 말 타타 나노는 전기차로 재탄생했다. ’자옘 나노‘라는 브랜드로 출시되는 나노 전기차는 우버 경쟁업체인 올라 캡스(Ol a Cabs)의 택시용으로 공급된다. 타타가 차체를 공급하고 자옘이 구동장치를 비롯한 부품 조달과 조립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 전기차는 48볼트급 모터로 한 번 충전에 200km를 달릴 수 있다. 1차로 인도 정부에 350대, 2차로 올라캡스에 400대를 공급한다.

 인도가 아닌 다른 개발도상국의 국민차 시장을 노크할 기회도 아직은 있다. 이웃 방글라데시 기업들이 타타 나노 생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 타타는 2월 뉴델리에서 열리는 제14회 자동차엑스포에서 전기차로 탈바꿈한 나노를 공식 선보일 예정이다. 가난한 사람도 큰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안전한 가족 이동수단을 꿈꾸며 등장한 ’타타 나노‘는 개발 10년을 맞아 부활의 꿈을 꿀 수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http://plug.hani.co.kr/fu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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