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공장 폐쇄와 대규모 희망퇴직 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지엠(GM)이 추가 구조조정 논란에 휩싸였다.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부문을 떼어내 별도 법인을 설립하려고 하자, 노조가 “구조조정 의도가 담겼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24일 인천 부평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회사 쪽이 추진하는 연구·개발 부문의 독자법인 설립 방침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새 법인 설립을 또 다른 구조조정의 시작 단계라고 본다. 노조는 “최근 베리 앵글 지엠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밝힌 한국지엠에 대한 신규 투자와 수출물량 확대 등은 환영할 만한 조치로서 지지한다”면서도 “다만, 알앤디(R&D) 법인 신설은 군산공장 폐쇄에 이은 또 다른 구조조정 음모로 규정하고 분명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앵글 사장은 지난 20일 한국지엠에 대한 5천만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와 부평공장의 설비 증설, 수출물량 확대, 차세대 콤팩트 스포츠실용차(SUV) 개발 거점으로 한국지엠 지정, 신규 엔지니어 100명 추가 채용,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의 한국 내 설치 등의 내용과 함께 신설법인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지엠은 “연구개발 투자의 일환으로 연말까지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집중 전담할 신설 법인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 가운데 새 법인 신설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대부분 생산과 연구개발 기능을 하나의 법인 아래 두고 있는데, 왜 지금 시점에 연구개발 기능을 한국지엠에서 떼어내 별도 법인을 만들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노조는 연구개발 법인 설립을, 회사를 구조조정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재편하는 사전 조처로 보고 있다. 지엠의 의도대로 연구개발 기능이 분리된다면 사실상 한국지엠 법인은 완성차와 변속기 생산 기능만 남게 돼 지엠 본사의 하청 생산기지로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과거 ‘한국지엠 철수설’이 불거질 때마다 연구·개발 기능만 남기고 생산시설을 폐쇄할 것이란 추측이 돌았는데, 항간의 소문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게 노조의 우려다.
노조는 “지엠이 말하는 법인 신설은 새로운 법인 설립이 아니라 기존 법인의 생산 공장과 연구개발 기능을 2개의 법인으로 분리하겠다는 것으로, 법인 쪼개기를 통한 제2의 공장 폐쇄 또는 매각 등 지엠 자본의 숨겨진 꼼수가 내포돼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지엠은 “기존 연구개발 부문의 역할이 대우차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경·소형차 개발 기능에 머물고 있다. 신설 법인은 글로벌 차량 개발 역할을 격상시켜 지엠 본사와 좀더 긴밀하게 일할 수 있도록 개편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회사 관계자는 “장기성장 비전으로 제시된 회생계획안은 변함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지엠 노조는 “회사가 돈이 없다며 노동자들의 퇴직금 중간정산을 미루는 상황에서 최근 팀장급 이상 960여명에게 1300만~1500만원씩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을 수혈받은 회사가 성과급 돈잔치를 벌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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