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재고품 속여 판 이랜드에 ‘중지’ 명령만
경제 프리즘
“소비자 피해 구제요? 스스로 알아서 하세요.”
제조연도 등이 표시된 태그(Tag)를 바꿔 재고품을 신제품으로 속여 팔아온 이랜드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제재를 내렸다. 17일 공정위는 이랜드에 위반 행위의 중지를 명령하고, 제재 사실을 일간지에 공표하도록 했다.
하지만 행위중지 명령은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여서 실효성이 없는데다 일간지 광고 역시 1곳에 국한돼, ‘솜방망이 제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헌옷을 새옷으로 속아 제값보다 비싸게 주고 산 소비자들의 피해구제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처를 내놓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표시광고법은 잘못된 표시로 소비자가 얼마나 현혹됐는가를 따진다”며 “헌옷을 새옷으로 판 사실과 소비자 현혹 사실은 인정되지만 태그 교체만으로는 소비자가 큰 피해를 봤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랜드가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6개 브랜드 600여종의 의류에서 태그가 교체된 제품 규모가 150억원 어치에 이른다. 이들 제품의 평균 단가를 5만원으로 치면 30만명이, 3만원으로 치면 무려 50만명이 제 값보다 30~50%씩 손해를 봤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이들 재고품의 70%인 420여종은 정가 또는 오히려 높은 가격에 판매됐고, 정가보다 낮게 책정된 나머지 30%도 마치 신제품인데 할인하는 양 판매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는 “피해 구제는 소비자 스스로 소비자보호원에 신청하든지 하고, 정 억울하면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라”는 ‘친절한’ 안내만 내놓았다.
문제가 된 재고품은 출고시기가 대부분 3~4년 전 것으로 태그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워, 실제 피해를 입었어도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구제 신청이 적을 경우 해당 기업은 위법행위에 따른 부당이득을 그대로 챙기게 되는 셈이다. “향후 재발 방지와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처”라는 공정위의 결정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또 태그갈이의 고의성을 인정하면서도 “사기 혐의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랜드는 “공정위 제재를 겸허히 수용하고, 공정위 조처와는 별도로 소비자 피해구제에 가능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이랜드는 “공정위 제재를 겸허히 수용하고, 공정위 조처와는 별도로 소비자 피해구제에 가능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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