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한국 이용자도 제힘 보여야
김재섭 기자의 얼바인 통신
미국에 살다 보면, 통신이나 인터넷 업체들이 이용자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이용자 권리를 침해한 게 드러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한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아메리카온라인이 회원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자 즉각 사과문을 발표하고 담당 임직원을 전격 해고한 것도 회원들의 집단 행동을 무마하기 위해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소비자를 향한 요금인하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이용자들은 그동안 “업체들이 무서워하기는커녕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실제로 업체들은 그동안 이용자들의 정보인권을 수없이 침해해 왔다. 고객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도 없이 마케팅에 이용하고, 심지어는 팔아먹기까지 한 경우도 있다.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남겨 배당·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소비자들의 요금인하 요구는 귓등으로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업체도 사과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았다. 이용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면 무시하거나 “그런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화가 나 소송을 하겠다고 하면 “할테면 해보라”고 거꾸로 으름장을 놓는다. 요금인하 요구도 귓등으로 흘린다. 그러니 이용자 쪽에서 보면, 통신·인터넷 업체들이 이용자에게 군림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업계가 무서워하는 곳이 있긴 하다. 정보통신부다. 소비자 권리나 정보인권을 침해한 게 드러나면, 정통부가 부르지 않아도 달려가 상황을 설명하고 고개를 숙인다. 또 배당·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도 정통부를 찾아가서는 요금을 내리면 투자재원이 준다고 죽는 소리를 한다. 큰 업체들은 대부분 이런 일을 전담하는 부서까지 두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이용자 책임도 크다. 이용자의 힘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피해를 당해도 그냥 넘어가주기를 반복한 결과다. 실제로 미국에선 집단 피해보상 소송거리가 한국에선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다.
정통부가 통신업체 및 시장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는 게 당연하다. 대신 필요한 규제는 더욱 강화하는 작업과 병행해야 한다. 정보인권 보호도 그 중 하나다. 정보인권은 정보화가 가속화할수록 중요성이 커진다. 하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산업 육성에 두다 보니 때로는 업체들한테 휘둘리기까지 하는 정통부에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소비자들은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 피해를 당할 때마다 피해보상 소송을 하고, 무시하면 불매운동을 하는 방법으로 소비자 힘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처럼. 기업이 소비자를 두려워한다는 말의 반대는 기업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다라고 할 수 있다. 대접을 받을 것인가, ‘봉’ 취급을 당할 것인가. 소비자가 선택할 일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결국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소비자들은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 피해를 당할 때마다 피해보상 소송을 하고, 무시하면 불매운동을 하는 방법으로 소비자 힘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처럼. 기업이 소비자를 두려워한다는 말의 반대는 기업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다라고 할 수 있다. 대접을 받을 것인가, ‘봉’ 취급을 당할 것인가. 소비자가 선택할 일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