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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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학교 동창을 만난 자리에서 재미있는 ‘제보’를 받았다. 3세대 이동통신(HSDPA) 서비스의 음성통화 품질이 기존 이동전화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건물 지하나 수도권 외곽 골프장 등에서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면, 음성통화 품질이 떨어지거나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했다. 음질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친구는 “이전에 쓰던 것으로 다시 바꿀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3세대 이동통신 업체 기술자에게 제보받은 내용이 맞는지 물어봤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기지국 안테나 방향을 조정하고 중계기를 달아 사각지대를 없애는 작업을 아직 다 끝내지 못했다고 했다. 7월 말쯤 돼야 마무리된단다. 따라서 10년 가까이 통신망을 개선해온 기존 이동전화나 개인휴대전화(PCS) 서비스 이용자가 3세대 이동통신으로 바꾸면 통화품질에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통화품질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사용자 몇 명의 경험을 갖고 통화품질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도 무리다. 3세대 이동통신의 통화품질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는 발견했다. 전화 연결이 안 되거나 끊기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에 불만을 갖는 게 아니라 반긴다는 점이다.
한 친구는 “다시 이동전화 품질 핑계를 댈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얼마 전 빌딩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전화를 거는데 연결되지 않더란다. 신호 세기를 나타내는 안테나 모양이 하나도 뜨지 않았다. 그는 당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사나 아내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경우, “건물 지하에 있어서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핑계’를 댄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런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았고, 또 통했다. 하지만 이동전화 업체간 치열한 통화품질 경쟁으로 ‘언제 어디서나’ 터지게 되면서 이런 핑계가 통하지 않게 됐다. 휴일에 혹시나 전화가 올까 이동전화가 터지지 않는 산으로 등산을 가고, 외국 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란 우스갯 소리를 주고받기도 했다. 국제로밍 서비스 대중화로 그것도 옛날얘기가 됐지만.
이런 상황은 소비자를 ‘교육’시켜 매출을 올리려는 이동통신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으로 만들어졌다. 교육에 넘어간 이용자 탓도 크다. 그 결과 이동통신 업체들은 폭리를 취하고, 이용자들은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처지로 몰렸다. 이용자끼리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서로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통화를 강제해 상대의 ‘자기 통화 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한도를 넘고 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직원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말고,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면 된다. 나중에 단말기에 표시된 발신자전화번호를 확인해, 통화가 필요하면 되걸기를 하면 된다. 이용자 스스로 ‘사각지대’를 만들자는 얘기다. 먼저 휴대전화를 ‘매너모드’로 바꾸자. 한두번 ‘깨질’ 각오를 하고.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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