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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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한 휴대전화 이용자가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악랄한 수법으로 이용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증거자료’로, 자신의 2년치 통화내역서를 제시했다. 여기엔 언제 어느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얼마 동안 통화했다는 내역이 정리돼 있었는데, 동시에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거나 하던 통화를 끝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동시에 통화를 했다며 요금을 부과한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통화를 하다가 전화가 걸려오면 통화 중인 것을 대기시켜 놓고 새로 걸려온 것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두 곳으로 전화를 걸거나 통화 중인 상태에서 전화를 거는 것은 어렵다. 기자는 즉시 ‘증거서류’를 들고 해당 이통사 홍보실로 달려가 해명을 요구했다. 홍보실이 발칵 뒤집혔다. 요금팀과 네트워크팀의 전문가들까지 동원됐다. 하지만 다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고 서로 되묻기만 했다. 몇 시간째 그러고 있는데, 교환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교환기마다 시간이 달라 발생한 현상일 뿐이란다. 이동전화 이용자가 차를 타고 달리면서 전화를 연거푸 건 경우, 앞 전화가 연결된 교환기 시간이 뒤에 걸린 전화가 연결된 교환기보다 느린 경우, 동시에 두 곳으로 전화를 걸었거나 아예 통화 순서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맞춰 놔도 시간이 지나면서 틀려진다고 했다.
통신업체들은 교환기를 ‘첨단장비’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시간이 다 다르단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통신망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장 기술자의 명쾌한 설명으로 이날 상황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첨단장비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 그로부터 얼마 뒤 전화가 자꾸 엉뚱한 번호로 연결된다는 제보를 받아 통신업체에 확인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통신업체 쪽은 “교환기는 첨단장비라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점검 결과, ‘구로 관문국’이란 곳에 있는 교환기가 전화를 엉뚱한 곳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정전으로 한때 가동 중단 사태를 빚었다고 한다. 반도체공장은 첨단시설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 곳이 단순 정전으로 가동이 중단됐단다.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첨단시설’의 자만 내지 첨단시설이란 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빚은 사태일 수도 있다. 첨단장비라는 교환기가 시간을 맞추지 못해 잠시지만 이동통신 업체를 ‘요금 도둑’으로 몰리게 한 것에 견줄 수 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강원도 어느 곳에서 발생한 산불의 원인을 놓고 한국전력과 주민들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민들은 전력선에서 발생한 붙티가 불을 냈다고 하고, 한전은 컴퓨터에 남겨진 전력선의 장애 발생 시간이 산불 발생 신고 시간보다 늦다며 주민들의 주장을 일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득 한전 장애감시 시스템과 소방서 화재신고 접수 시스템 장비의 시간이 정확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김재섭 기자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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