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일과 7일 장이 서는 정선 5일장은 국내의 대표적인 ‘관광 재래시장’으로 꼽힌다.
스러져가던 폐광촌, 관광열차 힘입어 명물장터 부활
토박이 할머니 바구니속 토속먹거리엔 옛 정취 듬뿍
토박이 할머니 바구니속 토속먹거리엔 옛 정취 듬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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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향기 나는 시장 / ⑪ 강원 정선 5일장
정선 5일장은 ‘추억’을 판다. 옥수수나 감자로 만든 음식들 냄새와 짚신, 놋쇠 촛대 따위를 내다파는 어르신들의 풍경은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의 아릿한 기억을 불러온다. ‘오라버니 장가는 명년에나 가시고 검둥 송아지 툭툭 팔아서 날 시집 보내주’(정선아리랑 한 구절)라고 조르던 시골처녀들은 이제 사라졌지만, 관광 명물로 거듭난 정선 5일장의 명성은 그대로다.
전국 최대규모의 재래시장 중 하나인 정선 5일장은 1966년 2월17일 처음으로 열렸다. 인근 산골에서 채취되는 산나물과 생필품을 사고팔던 작은 장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주위 관광지와 연계된 체험여행코스로 자리를 잡으며 더 널리 알려졌다. 재래시장들을 도는 장돌뱅이들은 ‘동해, 태백, 양양 등 강원 지역 5일장 중 정선에서 셈이 가장 낫다’고 입을 모은다. 정선시장 상인회의 김종철 회장은 “대부분 관광객들인 손님들은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 5일장에 온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광산 폐쇄로 한때 쇠락의 길로 가던 정선 5일장의 관광열차가 운행한 뒤부터 부활하기 시작했다. 4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5일장이 서는 날이나 주말이면 서울 청량리에서 정선으로 가는 관광열차가 출발한다. 열차는 1999년 3월 첫선을 보였다. 첫해 6만여명에 이르던 관광객들은 해마다 크게 늘어 올해 17만여명까지 불어났고, 100억원 이상의 지역 소득창출효과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겨울이 되면 장터는 160m의 상설시장 골목으로 범위가 좁아진다. 그러나 관광철에는 인근도로를 막은 공간까지 포함해 300여명 상인들이 모인 난장이 선다.
주말에 찾은 정선 5일장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끌어당기는 대목은 산나물·약초·잡곡을 파는 할머니들의 목에 달린 ‘신토불이 상인증’이다. 정선군으로부터 신토불이 상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모두 70여명인데, 이중 40여명이 이들 토박이 할머니들이다. 냉이, 달래, ‘굳은감자’(돼지감자), ‘맘마꾸’(민들레) 등을 파는 권순녀(74) 할머니는 “장이 서는 날엔 아침 8시에 몽탄리에서 나와 오후 4시반 버스로 돌아간다”면서 “수십년째 내 자리가 정해져 있어, 장날 따로 위치를 배정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먹을거리와 볼거리도 풍성하다. 국수가 딱딱해져 콧등을 친다고 ‘콧등치기’라고 불리는 메밀국수, 곤드레나물에 깨소금 등으로 버무린 곤드레밥,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묵, 옛날 찐빵, 메밀 부치기 등이 골목 식당들과 노점에서 팔린다. 달래, 씀바귀, 황기 등의 봄나물과 산초, 더덕 등의 가을걷이 등은 계절특산물로 유명하다. 관광철에는 각종 공연도 이어진다. 장터 안의 ‘아라리 공연장’에서는 정선아리랑, 품바, 사물놀이는 물론 록밴드의 공연까지 펼쳐진다. 마을 어르신들이 마련한 공동판매장 주변에서는 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떡메를 치고 짚신을 꼬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다. “남편 고향이 사북이라 가족들끼리 ‘고향가는 길’이라고 정한 뒤 정선 5일장을 찾아왔다”는 김향숙(40)씨는 “부추 말린 것이나 시레기를 저녁 상에 올려 아이들에게 옛 음식을 먹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선 5일장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상인과 주민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찾고 있다. 김종철 상인회장은 “최근 시설개선으로 지붕을 씌워 편리해졌지만, 예전 장터의 풍취는 조금 퇴색했다”며 “맷돌, 떡메치기 등을 재연하는 ‘전시공간’을 만드는 방법 등을 군청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옷가게를 하는 엄태영(34)씨는 “나물·채소를 팔지 않는 가게들은 황토속옷 같은 5일장에 어울리는 상품을 개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끝> 정선/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집에서 키운 잡곡이나 산나물을 5일장날 파는 ‘신토불이 상인’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다.
정선 5일장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상인과 주민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찾고 있다. 김종철 상인회장은 “최근 시설개선으로 지붕을 씌워 편리해졌지만, 예전 장터의 풍취는 조금 퇴색했다”며 “맷돌, 떡메치기 등을 재연하는 ‘전시공간’을 만드는 방법 등을 군청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옷가게를 하는 엄태영(34)씨는 “나물·채소를 팔지 않는 가게들은 황토속옷 같은 5일장에 어울리는 상품을 개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끝> 정선/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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