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끊고 자유롭게…디지털 기기 ‘무선 질주’
프린터·홈시어터 등 무선 잇따라 선보여
리모컨기능서 인터넷 파일전송 등 진화
값 하락·전용모델 증가로 사용자 늘어
리모컨기능서 인터넷 파일전송 등 진화
값 하락·전용모델 증가로 사용자 늘어
회사원 김한석씨는 무선마우스를 써보고 ‘무선’의 편리함에 반해 최근 무선 헤드세트도 구입했다. 전선들끼리 뒤엉켜 책상 위를 어지럽히던 마우스 줄이 사라지자 공간이 넓어지고 쾌적해졌다. 선이 꼬이기 일쑤여서 허공에서 흔들어 마우스 줄을 풀어줘야 했던 ‘일과’도 사라졌다. 달리기를 할 때 무선 헤드세트로 엠피3를 들으니, 동작도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다.
가정용 디지털 제품들이 하나둘씩 ‘줄’을 버리고 있다. ‘목줄’에서 풀려난 강아지같이, 해방감을 맛본 디지털 제품들은 다시 ‘사슬’로 돌아오려 하질 않는다. 리모컨과 휴대전화처럼.
이달 초 한국휴렛팩커드(HP)는 신제품 발표회에서 제품 시연에 앞서 피시와 프린터를 연결한 전선을 가위로 자르는 ‘케이블 커팅’ 세러머니를 했다. 프린터가 피시와 케이블로 연결될 필요없이, 무선으로 모든 게 처리되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한국HP를 비롯해 캐논코리아·한국엡손 등 가정용 프린터를 만드는 회사는 최근 제품들에 경쟁적으로 무선랜과 블루투스 등 무선통신 기능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HP 유우종 이사는 “무선기술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정에서 여러 대의 피시를 쓰게 된 요즘 비로소 본격 무선프린팅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마우스·키보드·헤드세트에 이어, 프린터·스피커·프로젝터·홈시어터 등 다양한 가정용 제품에서 선이 사라지고 있다. 무선 디지털기기는 리모컨과 같이 단순기능 위주에서 인터넷의 파일전송 프로그램처럼 콘텐츠를 주고받는 기능으로 진화하고 있다. 무선프린터만이 아니다. 음악과 동영상 재생기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팟 터치의 비결 중 하나는 엠피3 플레이어로는 최초로 채택한 무선인터넷 기능이다. 아이팟 터치는 와이파이를 내장해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곳 어디서나 데이터나 응용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고,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음악·동영상 감상이 가능하다. 무선 연결이 되면 콘텐츠를 기기에 다 담지 않고 스트리밍을 통해 즐길 수 있다. 에스케이네트웍스가 최근 내놓은 내비게이션은 블루투스를 탑재해, 주유소에 진입할 때 지도를 자동 업데이트하는 기능을 갖췄다.
무선 연결은 휴대용 기기만이 아니라, 홈시어터나 벽걸이 티브이 등 가정용 오디오·비디오 시스템에도 적용되고 있다. 넉 대 이상의 스피커를 설치해야 하는 홈시어터 제품에선 삼성·엘지·소니 등 제조사가 일찌감치 무선 스피커를 채택했다. 160GB의 저장공간을 갖춘 애플티브이는 다른 방에 있는 피시를 무선으로 연결해 동영상과 음악 등 피시 안의 콘텐츠를 티브이로 감상할 수 있는 홈네트워크 장치다.
올해 열린 국제 전자전시회도 무선 디지털기기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소니는 독일 소비자가전 박람회(IFA)에서 티브이와 미디어수신기를 초고속 무선연결하는 엘시디 티브이를 선보였고, 도쿄 정보통신기기전시회(CEATEC)에서 파나소닉과 히타치는 무선 고화질 티브이 시제품을 내놓았다. 엘지와 삼성도 2~3년 전부터 평판형 무선 티브이 시제품을 국제 전자전에서 선보인 바 있고, 최근에는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해 디카 등 다양한 기기를 무선연결할 수 있는 티브이를 내놓았다.
무선 제품의 대중화는 달라진 디지털 기기 사용환경 때문이다. 엠피3 플레이어, 전자사전, 피엠피, 내비게이션, 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프린터 등 주기적으로 컴퓨터에 연결해야 하는 기기들이 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융합 현상으로, 기기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야 사용가치가 높아진다. 연결 수요가 늘수록 선들은 꼬여간다. 서너개의 유에스비(USB) 포트로는 부족해, 휴대용 유에스비 허브가 등장할 정도다. 무선 기술의 발달도 사용자들을 끌고 있다. 벽 하나만 둬도 음질이 저하되던 초기의 성능이 크게 개선된 블루투스2.0은 음질 전달에 손색이 없다. 가격도 많이 내려가, 최근 인기가 높은 무선마우스와 무선키보드 세트는 4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피엠피인사이드 장기덕 팀장은 “무선 디지털기기의 인기는 값이 내려가고 적용모델이 늘어난 올해 초부터 두드러진 추세로, 최근 나오는 미니노트북은 블루투스 기능이 없는 제품이 없을 정도”라며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연결해 쓰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무선 선호의 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강변테크노마트 쪽은 “무선마우스와 키보드 세트의 경우 최근 구입 고객이 늘어 매장당 하루 5~6개 정도씩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선 디지털기기는 거추장스런 선 대신에 배터리를 필요로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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