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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핑·소비자

‘미끼상품’ 낚였다가 ‘묻지마 쇼핑’ 될라

등록 2010-02-12 14:45수정 2010-02-17 13:57

이마트 삼겹살 판매량·고객수·매출 증가율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 초저가상품 경쟁에 소비자 충동구매 우려
‘상시할인’ 뒤 이마트 매출 늘어…“결국은 남는 장사”




#1. 1997년, 대형마트들은 ‘최저가 보상제’를 경쟁적으로 내세웠다. 소비자가 산 상품의 가격이 다른 업체보다 높으면 그 차액의 수십배를 보상해 준다며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최저가 보상제’의 진화판인 ‘최저가 신고 보상제’도 나왔다. 더 낮은 가격을 신고만 해도 보상을 해준다는 소리에 ‘값파라치’까지 나왔다. ‘대형마트=싼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2. 2007년,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저가 경쟁을 하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의 고급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고급화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따라간다는 취지였다. 당시 이마트 쪽은 “소비자도 갈수록 정도가 심한 가격파괴 품목만 찾게 되거나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밝혔다.

#3. 2010년, 이마트는 할인점 본모습으로 돌아간다며 ‘상시할인 정책’을 들고 나왔다. 3년 만에 스스로 말을 바꾼 셈이다. 인기 품목인 삼겹살 100g 값은 원래 판매가격(1500원대)의 3분의 1인 500원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8일 업체간 가격경쟁에는 대응하지 않겠다며 처음 할인가격으로 되돌려놓아 가격경쟁은 잦아들고 있지만, 대형마트는 ‘가장 싼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복구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마트의 ‘상시할인 정책’ 선포로 대형마트간 경쟁은 인기 품목의 ‘가격전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신세계는 영업이익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상시할인 적용 품목을 올해 안에 모든 상품군으로 넓힐 계획이다. 시장포화에다 온라인 쇼핑몰의 활성화 등으로 지지부진한 대형마트의 성장세에 다시 강력한 엔진을 달겠다는 의미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할인점의 본질은 좋은 품질의 상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 고객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달라”며 상시할인 정책에 대한 구상을 내비친 바 있다. 그로부터 한달 뒤 실제로 가격할인 정책을 선포했다. 이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소비자를 위해 잘된 일”이라고 맞장구를 치며 가격전쟁이 불붙었다.

대형마트간 가격할인 경쟁은 일부 소비자에게 분명 희소식이다. 특히 ‘체리 피커’(cherry picker·기업이 제공하는 저가 상품이나 무료 서비스만을 골라 누리는 소비자)들은 물량이 동나기 전 대형마트를 찾아 저가 상품만을 골라 소비하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러나 ‘미끼상품’(loss leader)의 덫에 빠지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결국에는 전체 소비자의 주머니로부터 대형업체들이 더 많이 가져가는 꼴이다.

유통업체의 할인정책은 ‘미끼 마케팅 전략’이다. 대형마트가 이를 도입했다고 해서 부도덕하다고 지적할 수도 없다. 다만 문제는, 결국엔 업체 쪽의 ‘남는 장사를 위한 정책’인 것을 ‘다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내세운다는 점이다. 마케팅 이론에서는 미끼상품을 ‘유통업체들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려는 목적에서 원가보다도 싸게 팔거나 일반 판매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하는 상품’이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이마트는 지난 1월 한달 동안 전체 매출 비중의 3%(22개)에 해당하는 상품의 가격을 내렸는데 방문 고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매출은 6% 늘었다고 집계했다. 고객 수보다 매출 증가율이 더 높으니 객단가(1인당 구입액)는 높아지게 된다. 롯데마트의 1월 고객 수도 전달보다 2.3% 늘었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방문 고객 수의 증가로 판매 마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미끼상품의 ‘숨은 비용’(hidden fee)에 주목한다. 미끼상품을 사러 갔다고 하더라도 그 물건이 동나면 같은 품목의 다른 상품을 사거나, 계획에도 없던 품목을 사기도 한다. 소비자 김진명(35)씨는 “1000원도 안 되는 삼겹살 값을 보고 대형마트를 갔는데 정작 삼겹살은 다 떨어져 살 수 없어 다른 물건만 잔뜩 사게 됐다”고 말했다. 소비심리 연구자들은 이처럼 사려는 물건이 없어도 구매하는 심리를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일컫는다. 미끼상품 마케팅이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다.

결국 소비자에겐 ‘이성의 끈’을 붙잡는 게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대형마트가 제공하겠다는 ‘고객 가치’는 누릴 수 없고, 길을 잃고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소비자시민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대형마트들의 가격인하 경쟁의 성과는 소비자나 협력업체의 비용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며 “2000년대 중반의 사례처럼 대형마트가 그 목적을 성취하면 또 얼굴을 바꿔 저가정책을 언제 철회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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