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대학생 이정석(22)씨는 가끔 휴대전화 통화 중에 문자메시지가 오면 통화가 끊기는 불편을 겪다가 제조업체 유지보수센터를 방문해 수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소프트웨어를 새 것으로 바꿔 설치했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휴대전화를 켜보는 즉시 수리받은 것을 후회했다.
게임과 음악 등 그동안 받아놓은 콘텐츠 가운데 상당부분이 사라졌다. 모두 엄청난 시간과 정보이용료, 데이터통신료를 들여 받아놓은 것이다. 유지보수센터 직원에게 따지자, “고객님 휴대전화에서 나타나는 불량 현상을 해결하려면, 소프트웨어를 모두 지우고 새로 깔아야 하는데, 그러면 콘텐츠도 지워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내며, “소비자쪽에서 보면 휴대전화 불량에 따른 불편에 더해 시간과 비용을 들인 콘텐츠 유실까지 이중으로 피해를 당하는 꼴 아니냐”며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으면서 수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대뜸 “이동통신 업체들이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쪽에서 보면 이동통신 업체들이 ‘갑’이라, 소비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갑을 의식해서인지, 그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으면서 휴대전화를 수리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동통신 업체쪽의 요구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통신 업체쪽에서 보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수리 과정에서 콘텐츠가 지워지면, 사용자는 다시 내려받을 것이고, 그러면 게임은 하나당 수천원, 음악은 수백원씩의 추가 매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이동통신 업체들은 고객을 고객으로 보는 게 아닌 게 된다. ‘매출 짜내는 기계’ 정도로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체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갑의 요구라고 해도,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과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가진 기업이라면 그럴 수 없다.
휴대전화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불량 발생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모바일사용자연합이 회원들에게 물어본 결과를 보면, 절반 가까이가 휴대전화 불량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출시 전 휴대전화의 안정성과 호환성을 검증하는 시험을 해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묵살되는 것도, 고장이 자주 발생해야 새 것으로 바꿀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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