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카드사용 34%↑, 1인당 쓴돈 사상최고치
“유럽이나 미국 여행객 중에는 도착하자마자 명품점부터 안내해 달라는 분들도 있고, 수백만원이 넘는 옷과 향수·잡화를 한꺼번에 사오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쇼핑을 위해 외국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서울 ㅎ여행사 직원)
국외 여행객이 늘면서 이들이 외국에서 상품·서비스 구매에 쓰는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분기 중 신용카드 해외 사용실적’을 보면, 지난 4~6월 석 달 동안 국외 여행자들이 사용한 신용카드 금액은 모두 9억700만달러(약 92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4%나 늘었다. 이 금액은 분기별 사용액으로 사상 최대치이며, 1999년 한 해 신용카드 국외 사용액(9억1100만달러)에 맞먹는 수준이다.
여행객들의 신용카드 국외 사용액은 지난해 1분기 6억2천만달러, 3분기 7억3500만달러, 올해 1분기 7억9천만달러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1인당 신용카드 국외 사용금액도 2분기 중 약 70만원(624달러)에 달해 역시 사상 최대치였다.
올 들어 7월까지 출국한 여행자 수는 모두 829만명7천명(관세청 집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었다. 출국자 수는 2003년 1039만명, 지난해 1305만명이었으며, 올해는 15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관광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국외 여행객 급증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포함한 총 여행지출 규모(유학·연수자 제외)는 7월까지 65억1760만달러(약 6조7천억원)로 집계됐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대략 15조원 가량이 여행객들의 주머니를 통해 국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한은은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국외 소비 급증이 국제수지 악화는 물론 국내 소비 둔화를 불러와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7월 말 현재 여행·운수 등에 의한 서비스수지 적자규모는 전년 동기(43억달러)의 갑절에 이르는 76억달러를 기록해 경상수지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등장했다. 또 전체 가계소비에서 국외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2.1%에서 지난해 3.2%까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내수소비 둔화와 성장률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 손영기 팀장은 “투자뿐 아니라 소비마저 국외 비중이 늘면 국내 소비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고, 결국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낙후된 국내 소비시장을 개발해 부유층의 국내 소비 기피와 국외 지출 증가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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