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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텔레콤(SKT)이 지금은 월 1천원씩 받는 발신자전화번호표시(CID) 서비스 이용료를 내년부터 무료화하기로 한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일부 언론들이 에스케이티의 시아이디 이용료 무료화를 “정보통신부가 정치권의 압력을 받아 에스케이티에게 시아이디 서비스를 무료화하라고 종용했다”고 단정지으며, “이동통신 업체들이 불쌍하다”는 동정론까지 펴고 있다.
이동통신 업계, 그 중에서도 케이티에프(KTF)와 엘지텔레콤(LGT)이 시아이디 무료화 흐름에 저항하는 논리와 같다. 이들 업체 임직원들은 에스케이티의 시아이디 무료화 결정에 대해 “너무나 갑작스러운 결정”이라며, “정치권과 정통부의 압력이 얼마나 거셌으면 그랬겠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에스케이티의 시아이디 무료화가 정치권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이동통신 업계의 주장과 일부 언론의 보도는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다. 시아이디 무료화 요구는 이동전화 소비자쪽에서 먼저 제기됐다. 이들은 2001년 시아이디 서비스가 시작될 때부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무료화를 요구해왔다. 이게 언론에 보도되자, 시민단체들이 가세해 이동전화 소비자들의 권익찾기 운동으로 발전시켰고, 그 결과 시아이디 무료화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자 정치권이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올 국정감사 때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시아이디 무료화를 요구한 것을 두고, 시민단체와 이동통신 업계에서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들이민 처지에 웬 생색내기 다툼”이냐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에스케이티야 이미 내년부터 무료화하겠다고 밝혀 어쩔 수 없지만, 케이티에프와 엘지티는 아직 기회가 있다. 무료화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처럼 월 1천(케이티에프)~2천(엘지티)원씩 계속 받으면 된다. 요금 구조를 다시 설계해, 시아이디 이용료를 받는지 안받는지 모르게 하는 ‘기술’을 쓸 수도 있다.
이동전화 소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원하는 것은 고객을 생각해주는 마음이지, 월 1천~2천원밖에 안되는 돈이 아니다. 그래서 시아이디 무료화가 정치권과 정통부의 압력에 따른 것이란 이동통신 업체들의 주장에 서운함마저 든다고 한다. 이동통신 업체들에게 어차피 무료화할 것인데 빈말이라도 “고객들의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힘들지만 무료화하기로 했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면 지나친 욕심일까.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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