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천연효모빵. 사진 SPC그룹 제공
열려라 입맛/ SPC그룹 파리바게뜨
서울대와 11년간 전통누룩 연구
천연효모 발굴해 첫 제빵 상용화
담백한 맛에 쫄깃한 식감 일품
서울대와 11년간 전통누룩 연구
천연효모 발굴해 첫 제빵 상용화
담백한 맛에 쫄깃한 식감 일품
빵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재료는 4가지다. 밀가루, 물, 소금 그리고 효모다. 영어로 이스트(yeast)라 불리는 효모는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는 역할을 한다. 효모는 살아있는 세포다. 효모는 빵을 만들 때뿐 아니라 술을 빚을 때도 꼭 필요하다.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거나 막걸리를 빚을 때 효모가 하는 역할이 발효다. 발효란 유기물이 미생물의 활동에 의해 분해되거나 변화하는 현상을 통해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제빵의 발효는 효모 내에 포함되어 있는 인버타아제(invertase), 치마아제(zymase) 등의 효소작용으로 일어난다. 효모가 당을 분해하여 흡수한 뒤 배설하는 형태로 알코올 및 탄산가스를 생성하게 된다.
빵 반죽을 오랫동안 주무르는 과정에서 글루텐이 형성되고, 탄탄하게 형성된 글루텐 막으로 인해서 반죽 속에서 효모의 작용으로 생성된 탄산가스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반죽 안에 겹겹이 탄산가스가 쌓이게 되고 반죽이 점점 부풀어 올라 1.5배 정도 커진다. 발효 후에는, 각종 유기산이 형성되어 풍미가 좋아지고, 탄산가스로 인해 부피가 늘어 반죽 속에 수많은 기공이 생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식품업계는 이 효모를 거의 수입에 의존해 왔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효모를 SPC그룹이 국산화했다. SPC그룹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전통 누룩에서 제빵용 토종 천연효모를 발굴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빵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2005년 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가장 두드러진 성과다.
효모는 빵의 맛과 향, 풍미를 좌우하는 제빵의 핵심 요소지만, 연구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투자가 필요해 관련 연구가 부족했다. SPC그룹과 서울대 연구진은 11년동안 1만여 개의 토종 미생물을 분석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제빵에 적합한 순수 토종 효모 발굴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청정지역인 청풍호, 지리산, 설악산 등에서 미생물을 채집하고, 토종꿀, 김치, 누룩 등 한국의 전통식품 소재를 구하기 위해 각 지방의 5일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식품생명공학 전공 서진호 교수는 “이번 제빵용 토종 천연효모의 발굴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낸 것과 같다”며, “고유의 발효 미생물 종균이 거의 없는 국내 발효식품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쾌거”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소재인 누룩에서 서양의 음식인 빵을 만드는 데 적합한 미생물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전문가와 학계에서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에 발굴한 천연효모는 발효취가 적고 담백한 풍미로 빵을 만들 때 다른 원료의 맛을 살려주고 쫄깃한 식감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제빵에 알맞는 발효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빵의 노화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SPC그룹은 이 천연효모를 사용한 제품 개발에도 성공해 파리바게뜨를 통해 천연효모빵 27종을 출시했으며, 향후 순차적으로 제품을 확대하고 삼립식품 등 타 계열사에도 적용해 나갈 계획이다.
SPC그룹 관계자는 “향후 해외 파리바게뜨의 제품도 토종 천연효모로 만들어 글로벌 베이커리들과 경쟁할 예정”이라며, “차별화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꾸준한 R&D 투자로 세계 최고의 품질 경쟁력을 갖춘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SPC그룹의 모태인 상미당은 1945년 창립했다. 삼립이 만든 크림빵은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한번쯤 먹어봤을법한 ‘국민의 간식’이었다. 크림빵은 어디서나 살 수 있었다. 열차 안에서는 시중 가격보다 15% 정도 싸게 팔았는데 열차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싸게 크림빵을 사서 학교에 가서 제값을 받고 팔기도 했다. 책가방에 책은 없고 온통 크림빵뿐인 때도 적지 않았다.
삼립식품은 1983년 국내 제빵업계에선 처음으로 연구소를 설립했다. 파리바게뜨 매장이 전국에 세워지고 계열사들이 늘어나면서 그룹으로 탈바꿈한 SPC는 2005년 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만들고 2009년엔 서울대학교에 SPC농생명과학연구동을 세우며 연구소를 확대했다. 토종 효모 발굴 프로젝트에는 11년 동안 연구비로만 160억 원이 투입됐다. 투자한 만큼 성과도 있었다. 이번에 발굴한 천연효모 외에도 발효미생물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특허를 받았다. 국내 9건, 해외 6건 등 모두 15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사진 SPC그룹 제공
“원천기술 가져야 산다” 허영인 회장의 뚝심 “다른 회사라면 절대 못했을 일입니다. 11년이나 기다려줄 경영인도 없고,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일 아닙니까. 허영인(사진 왼쪽 둘째)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SPC그룹이 토종 천연효모를 발굴해 빵을 만들어 선을 보인 날 한 식품회사 간부가 한 말이다. 빵을 부풀게 하는 효모는 국산이 아니어도 대체재가 많이 있다. 이스트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의 제빵업체들이 이스트를 사용한다. 가격도 싸다. 천연효모 개발에 회의적인 의견이 회사 안에서 개진될 때마다 허영인 회장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고집했다. 1980년대 미국제빵학교 유학시절부터 가졌던 꿈이다. 연구소에만 맡겨두지 않고 스스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허 회장의 뚝심이 결국 토종 효모 발굴이라는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SPC그룹에 천연 효모 상용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매년 R&D에 500억 원씩 투자하는 SPC그룹은 천연 효모와 같은 미생물을 산업화하는 바이오 신소재 연구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파리바게뜨 로만밀식빵.사진 SPC그룹 제공
“원천기술 가져야 산다” 허영인 회장의 뚝심 “다른 회사라면 절대 못했을 일입니다. 11년이나 기다려줄 경영인도 없고,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일 아닙니까. 허영인(사진 왼쪽 둘째)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허영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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