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최근 한 독자가 도움을 요청해왔다. 예전에 쓰던 ‘보석글’로 만들어진 문서를 열어봐야 하는데,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보석글은 1990년대초 삼보컴퓨터가 보급한 한글문서편집기다. 삼보컴퓨터에 문의했더니 “소프트웨어가 남아있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컴퓨터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후속 제품이 계속 나오고, 유지보수가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느냐’이다. 소프트웨어라는 게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것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사용법을 새로 익혀야 하는데다, 독자의 경우처럼 이전에 사용하던 소프트웨어로 만든 문서를 열어보지 못해 발을 구를 수도 있다.
나는 업무용으로 쓰는 노트북의 운영체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98’을 쓴다. 내 노트북에 깔린 업무용 통합소프트웨어 ‘오피스’,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인터넷 익스플로러’, 전자우편 관리 프로그램 ‘아웃룩’ 등도 모두 엠에스 것이다. 나는 개인용컴퓨터 운영체제로 ‘도스’가 사용될 때부터 엠에스 소프트웨어를 주로 써왔다. 컴퓨터를 사면 깔려 있는 것을 그냥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엠에스 것이니, 후속 제품을 내놓지 않거나 유지보수를 중단하는 사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엠에스가 최근 증권거래소에 낸 보고서에서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윈도에서 ‘윈도미디어플레이어’나 ‘메신저’등을 분리하라고 결정하면,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고 밝힌 이후 이런 믿음이 깨졌다.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보지는 않지만, 엠에스가 나(고객)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엠에스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지 말란 법도 없다. 엠에스는 투자자들에게 공정위 결정에 따라 철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엠에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투자자들에게 천명한 것이다.
엠에스는 이미 내년 7월부터는 윈도98에 대한 보안패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윈도98 사용자들은 이 때부터 보안 허점을 보완해주는 패치파일을 공급받지 못한다. 엠에스는 소프트웨어를 들춰보는 것까지 저작권 침해 행위로 간주하고 있어, 사용자가 패치파일을 만들어 쓸 수도 없다.
앞으로 엠에스가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후속 제품을 공급할 때 한글화를 늦추거나 한국 소비자를 차별하는 모습을 보이면, 철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소비자들도 소프트웨어를 고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게 있다. 엠에스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거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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