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이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의미로 깨알 같은 글씨로 작성한 문서를 재판부에 보냈다.
깨알 같은 글씨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기업들의 ‘꼼수 마케팅’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7일 경품 행사를 통해 대량 수집한 고객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홈플러스와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원심의 무죄 선고를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광고 및 경품 행사의 주된 목적을 숨긴 채 사은 행사를 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오인하게 한 다음 경품 행사와는 무관한 고객들의 개인정보까지 수집하여 이를 제3자에게 제공했다”며 “이는 (법이 금지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활용 고지사항 글자 크기가 1㎜에 불과한 점 역시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정한 수단을 통한 개인정보 동의’라고 봤다.
홈플러스는 2011~2014년 10여 차례 경품 행사 등으로 모은 고객 개인정보 2400만여건을 보험사에 231억7천만원에 판매한 혐의로 2015년 2월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홈플러스가 응모권의 고지사항을 1㎜ 크기 글자로 기재해 알아보기 어렵게 하는 편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은 응모권에 ‘개인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 등 법률상 고지해야 할 사항이 모두 적혀 있다며 홈플러스에 무죄를 선고했다. 1㎜ 크기 고지사항도 “사람이 읽을 수 없는 크기가 아니며 복권 등 다른 응모권의 글자 크기와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형식논리에 입각한 기계적 판단’이라는 사회적 비판이 일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했다”며 “향후 소비자 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가 홈플러스에 부과한 4억3500만원의 과징금 역시 취소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홈플러스가 응모자 개인정보가 보험사에 제공되는 사실을 명확히 알리지 않는 등 기만적 광고를 했다며 2015년 4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매겼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경실련 등 정보인권 보호 활동을 펴고 있는 인권·시민단체들은 이날 공동으로 성명을 내어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바에 따른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로 기업의 개인정보 매매 관행을 뿌리 뽑고, 대한민국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