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2014년 5월 모바일 선주문 시스템인 ‘사이렌 오더’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여주고 고객 취향에 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이 시스템은 미국 스타벅스 본사로 수출됐으며 지난해 2월부터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설문조사 모집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제공
사람의 마음은 어떨 때 움직일까요? 지난 2월 출시된 별다방 슈크림라떼를 처음 봤을 때 추억처럼 아련하고 대리석처럼 고급스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음료는 출시 22일 만에 100만 잔이 팔렸습니다. 이 음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습니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기록하고 1000호점을 낸 스타벅스의 저력에 대한 오래된 궁금증도 풀어봤습니다.
얼마 전부터 스타벅스에 급관심을 갖게 됐다. ‘먹스타’로 불리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에스엔에스(SNS) 탓이 크다. 철만 바뀌면 내 에스엔에스에는 별다방(스타벅스의 별칭, 스벅이라고도 불림)의 새 음료들이 도배됐다. 원하지 않는데 스벅 브랜드의 노출량이 급증한 셈이다. 그러나 무설탕아메리카노만 먹는 나에게 이런 포스팅은 그렇고 그런 전단지쯤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올해 2월 나온 슈크림라떼 전만 해도 말이다.
“레알 바닐라빈이 씹히다니”
슈크림은 추억이다.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누리꾼이 별다방에서 슈크림라떼가 나왔다고 엄청나게 포스팅을 올렸다. 2월15일 출시된 이 음료는 출시 22일 만에 100만잔 판매를 기록했다. 이벤트 음료로는 스타벅스 사상 최단 기록이었다.
슈크림라떼의 첫인상은 다른 이벤트성 음료들하고 달리 차분했다. 보통 봄에 음료회사의 이벤트 상품은 대부분 딸기나 체리를 써 색깔이 화려하다.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슐츠조차 맨 처음 이 음료를 보고 “뭐야, 분필가루로 만든 거 같잖아”라고 반응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음료는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노란빛이었다. 맛도 아주 달지 않고 적당했다.
슈크림라떼 22일만 100만잔 팔려
1년전 기획…일부 매장선 품절
지난해부터 충성고객 300만명 대상
설문조사한 빅데이터 적극 활용
스타벅스 DNA, 음료 아니라 IT
업계 최초 O2O서비스 개발해
미국 본사에 거꾸로 수출하기도
“커피와 특별한 IT 경험 선사”
게다가 진짜 바닐라빈이 씹혔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제빵을 한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천연 바닐라빈은 한 줄기에 3천원쯤 하는 고가다. 이 음료는 고가의 천연 바닐라 페이스트를 넣었다. 물론 살짝. 아프리카산 고품질 진짜 빈에서 추출한 페이스트라고 한다. 먹고 난 뒤 소감은 추억으로 접근했다가 맛의 신세계를 만난 느낌이었다.
처음엔 슈크림라떼가 스타벅스 본사에서 기획해 세계 공통으로 출시하는 다국적 음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음료는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만의 음료였다. 그것도 올해 닭의 해(정유년)를 맞아 무려 1년 가까이 기획한 음료였다. 슈크림은 달걀노른자에 버터와 설탕 등을 넣어 만든다. 원래 이 음료는 커스터드라떼로 기획했다가 커스터드의 무거운 맛을 슈크림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 음료의 성공에는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마이 스타벅스’ 회원 300만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마이 스타벅스 리뷰’(MSR)라는 최신 빅데이터 기법이 사용됐다. 엠에스아르는 스타벅스의 온라인 주문시스템인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는 스타벅스 충성고객 집단(마이 스타벅스 회원)을 상대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를 말한다.
슈크림라떼는 적당한 노란색 크림과 천연 바닐라빈이 씹히는 게 특징이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제공
슈크림라떼는 1등 기업들이 갖기 쉬운 약점인 거만·고루·나태 따위와는 거리가 먼, 꽤 괜찮은 혁신 사례였던 셈이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달성한 부동의 1위 커피전문기업이다. 2016년 매출의 경우 이 회사가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2위인 이디야와 5배의 매출 차이가 난다.
스타벅스의 디엔에이(DNA)는 분명히 커피다. 그런데 겉모습만 그렇다. 알면 알수록 스타벅스는 음료회사라고만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히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아이티(IT)회사에 가깝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사이렌 오더 고객을 대상으로 수집한 빅데이터는 시럽의 양과 우유의 종류 등 고객 개인에게 최적화된 음료 서비스는 물론이고 새로운 상품으로까지 개발되고 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이 서비스는 세계 60개국의 현지 법인 가운데 최초이며 미국으로 역수출될 정도다.
손맛 아니라 빅데이터가 음료 만든다
대부분 음료회사는 판매 통계라는 빅데이터가 있다. 어떤 음료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팔리느냐는 정보다. 그리고 회사별로 독자적인 설문조사 패널을 가지고 있다. 음료의 맛과 만족도 그리고 니즈(수요)를 체크하는 용도다. 패널의 규모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많아야 수십명이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역시 이런 판매 데이터와 설문조사 패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엠에스아르를 통해 얻은 빅데이터는 기존 빅데이터와 다르다. 일반 모집단이 300만명으로 크다. 거기다 사이렌 오더를 쓰는 충성고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한 번에 10만명을 한다. 심지어 설문 문항의 40%는 주관식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회원의 3분의 1인 100만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양과 질이 다른 모집단을 상대로 한 리뷰로 이 회사는 지속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슈크림라떼의 기획과 제품 개발은 이 빅데이터를 쓰지 않고 기존 패널 조사로 이루어졌다. 제품 기획이 엠에스아르를 운용하기 시작한 지난해 2월 이전에 수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벤트성 상품이었던 슈크림라떼는 올해 초 출시되자마자 각 매장에서 품절이 돼 못 팔 정도였다. 한 달간 한정 판매하기로 한 이 제품에 대한 판매를 연장해달라는 고객 요청도 쇄도했다.
이 회사 카테고리음료팀과 디지털마케팅팀은 연장 판매 여부를 묻기 위해 엠에스아르를 실시했다. 슈크림라떼가 왜 인기가 있는지, 그리고 계속 출시했을 경우에 니즈가 지속될지에 대한 조사였다. 천연 바닐라빈 물량을 이벤트 기간에 맞춰 구매했기 때문에 새로 구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었다.
조사 결과 이 제품에 소비자가 열광한 이유와 지속 구매 의사를 파악해 결국 연장 출시를 결정했다. 디지털마케팅팀 강민지 파트너는 “엠에스아르는 다른 회사와 달리 완결된 플랫폼이다. 기존의 설문조사는 ‘아 그렇구나’ 정도만 알 수 있다면 이 플랫폼은 고객 니즈의 내용과 그 방향성을 알 수 있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출시된 캐모마일애플티다. 이 제품은 슈크림라떼와 달리 처음부터 엠에스아르를 이용해 조사했다. 고객들은 스타벅스의 티 제품이 다른 회사 제품과 차별성이 없고 바리스타들의 기술을 요구하는 커피와 달리 뜨거운 물만 사용하는데 비싸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의 방향성은 단순한 차가 아니라 색깔·과일 등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캐모마일애플티를 선보였다. 이 차는 정해진 시간을 잘 우리면 캐모마일 향과 함께 진한 사과 향이 난다. 진짜 마른사과를 넣었기 때문이다. 슈크림라떼와 캐모마일애플티를 기획한 홍창현 카테고리음료팀 대리는 “엠에스아르를 이용하면 정확한 고객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디지털 서비스 강화 전략의 개념도. 어떤 매장에서나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개인 맞춤 서비스, 간편한 결제, 빠른 주문, 그리고 다양한 혜택을 강조하고 있다. 스타벅스 2016년 투자자 설명회 자료집
2008년 금융위기부터 디지털 강조해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고객의 마음을 읽는 새로운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한 과정을 보면 아이티 기업의 집요한 노력을 연상시킨다. 이 회사는 2년 전에 이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좀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09년 업계에서 처음으로 선불식 충전카드를 도입했고 2011년에는 모바일 사이트 결제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는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해 단골들에게 좀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이어 2012년에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커피음료기업들도 해온 일이다.
그런데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조금 남달랐다. 이런 모바일 결제 환경을 토대로 2014년 5월 모바일 선주문 시스템인 사이렌 오더를 도입했다. 이용 방식은 간단하다. 앱에서 사이렌 오더 메뉴를 고르고 결제를 한다. 메뉴를 고를 때 저지방 우유를 쓸지 시럽을 넣을지 등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료를 고를 수 있다. 그런 다음 주문할 매장을 선택한다. 스타벅스는 근거리 위치 기반 고주파장비를 이용해 주문 고객의 접근을 매장에 알려준다. 고객이 매장에 도착하면 기다리지 않고 주문한 음료를 받아갈 수 있다.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를 활용해 단골 고객에게 ‘합법적 새치기’가 가능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이 서비스는 주로 사람이 몰리는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에 사용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서비스 이용자의 77%는 여성이며 가장 주문이 많은 메뉴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프라푸치노였다.
사이렌 오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음료에 적용한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O2O는 티몬 등 반값 공동구매로 널리 알려진 소셜코머스로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점이 확산되면서 방향성을 구분하지 않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유기적으로 제공하는 ‘옴니마켓’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배달의민족, 에어비앤비, 카카오택시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IT시대라도 기업의 본질은 사람과 윤리”
스타벅스 본사 역시 이런 디지털 기술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1971년 차별화된 원두커피의 향으로 출발한 이 기업은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2007년 말 기업가치가 130억달러로 연초 대비 42%가 폭락하기도 했으며 2008년 2분기에는 창업 이래 최초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하워드 슐츠는 2008년 경영에 다시 복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뼈대를 세웠다. 커피라는 고유한 경쟁력과 디지털 서비스를 강조했다. 커피보다 더 관심을 끌었던 것은 디지털 혁신이었다. 그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객에게 스타벅스의 경험을 높이는 기회를 만든다는 비전을 세우고 아이티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2009년 도입된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직불카드를 이용해 커피를 주문하면 별을 주는데 이 별을 5개 모으면 그린레벨이 되고, 별을 30개 모으면 골드레벨로 올라간다. 골드레벨과 그린레벨의 혜택은 천양지차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쪼랩(초심자)과 만랩(고수)의 차이를 커피를 마시면서도 실감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전략 덕분에 스타벅스의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 가입자는 지난해 10월 기준 1200만명이 넘어섰는데 이는 전년에 견줘 18% 증가한 것이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인공지능에까지 관심을 넓히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 1월 말 모바일 앱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고객이 음성으로 스타벅스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마이 스타벅스 바리스타 서비스’를 시범 실시했다.
스타벅스가 디지털을 강조하는 이유는 2011년 4월 한국을 방한한 슐츠의 강연에서 잘 설명된다. 그는 “2008년 위기 극복 당시 그 비중이 증가되고 있는 에스엔에스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염두에 뒀다”며 “특히 많은 기업들이 에스엔에스로 물건을 팔려고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신뢰와 소통의 채널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슐츠는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에 대해서 궁금해할 만큼 수준이 높아졌다”며 “기업의 윤리와, 기업과 직원과의 관계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와 협력업체를 경시하는 갑질문화가 만연한 우리나라 기업 현실에서 가슴이 뻥 뚫리게 하는 말이다.
실제 하워드 슐츠는 1987년 회사를 인수한 뒤부터 모든 직원을 정규직화하고 의료보험을 제공했다. 민간보험 중심인 미국 기업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도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하며 채용 즉시 4대보험을 제공해왔다. 입사 4년 정도면 부점장이 되는데 시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된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최근에는 엠에스아르를 이용해 제주 지역에서만 출시할 로컬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판매된 스벅의 음료는 수량만 파악될 뿐이지 지역 주민이 마신 건지 관광객이 마신 건지 파악되지 않았다. 4월 말부터 5월1일까지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제주에 누구와 함께 가는지, 어느 시기에 가는지 등을 조사했다. 지난해에도 한라봉과 녹차를 이용한 음료 2종을 출시한 바 있다. 스벅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청정한 제주도를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