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백진우(33)씨는 이달 초부터 ‘문센족’이 됐다. 문센족은 퇴근 뒤 여가 활동을 위해 문화센터를 찾는 사람들을 말한다. 백씨가 선택한 것은 글씨를 그림처럼 그리는 ‘캘리그래피’ 수업이다. 이제 3번 정도 수업을 들었지만, 글씨를 그리는 동안 낮에 받았던 직장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거 같아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
백씨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불필요한 야근이 사라지다 보니 새로운 취미 생활에 도전하게 됐다”며 “앞으로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도 병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 캘리그래피용 붓펜을 온라인 마켓에서 샀다. “미술 관련 제품을 산 건 처음이다”고 백씨는 말했다.
백씨 사례처럼 이달 들어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가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일명 ‘워라밸 제품’ 판매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23일 오픈마켓 옥션의 매출 자료를 보면, 지난 1~18일 사이 워라밸 제품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최대 수십 배 증가했다. 특히 미술 관련 제품의 인기가 높았다. 수채화 용품이 12배(1100%)나 늘었고, 유화 용품(172%)과 아크릴 용품(34%)도 덩달아 많이 팔렸다. 데생이나 점묘 등에 필요한 파스텔은 지난해보다 2배(117%) 이상 판매량이 뛰었고, 콩테·목탄(75%)과 소묘연필·흑연(43%)도 많이 나갔다. 캘리그래피 용품(47%)도 인기였다. 그림을 그리며 심신의 안정을 찾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때문이라고 옥션 쪽은 분석했다.
염색이나 가죽공예 제품도 많이 찾는다. 염색·염료공예 관련 제품이 2배(141%) 이상 늘었고, 가죽공예(89%)와 한지·점토공예(32%)도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악기 또한 열풍이다. 그 가운데 가격이 저렴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소형 악기가 인기다. 지난해 대비 오카리나가 58%, 하모니카가 75% 많이 팔렸다.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인 젬베 판매량은 5배(479%)나 치솟았고, 서서 연주하는 아코디언(111%)도 2배 이상 판매가 늘었다.
워라밸의 대명사인 운동용품도 잘 팔린다. 특히 강도 높은 전문적 운동이 아닌 가족들과 안전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소프트 발리볼, 킨볼(대형 공을 서로 던지면서 노는 스포츠), 소프트 테니스 같은 ‘뉴 스포츠’ 용품 판매가 이달 들어 123% 성장했다. 이 가운데 간이형 배구인 소프트 발리볼 용품은 69배(6850%)나 증가해 눈길을 끌었다.
옥션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뒤 다양한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특히 1인 가구 증가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취미 용품이 새로운 히트 상품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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