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장인들이 퇴근 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수채화 강의를 듣고 있다. 신세계 제공
그동안 백화점 문화센터는 여유 있는 삶의 상징이었다. 모두 일하는 낮 시간에 꽃꽂이나 에어로빅, 밑반찬 수업 등을 듣는 주부들이 주요 이용고객이었다. 시쳇말로 ‘청담동 며느리’들이 다니던 곳이었다.
여유 있는 전업주부의 상징이었던 백화점 문화센터가 최근 바뀌고 있다. 주요 수강생들이 주부들에서 2030세대로 내려가는 추세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다. 이미 칼퇴근 뒤 문화센터로 가는 직장인이라는 뜻의 ‘문센족’이란 유행어까지 생겼다. 백화점들도 발 빠르게 이들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문화센터인 신세계 아카데미는 올 가을학기(9월~11월)부터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는 ‘워라벨’ 강좌를 기존보다 15% 늘렸다. 지난달 23일부터 수강생 모집을 시작했는데, ‘와인 소믈리에 과정’이나 ‘기초 드럼’, ‘필라테스’ 같은 강좌는 수강인원을 20% 늘렸음에도 벌써 마감됐다. 젊은 직장인이 대거 등록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신세계가 지난 여름학기 등록 수강생을 조사했더니 2030세대가 20%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의 8%와 비교하면 2.5배 늘어난 셈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던 오전 11시와 낮 1~2시 시간대 강의가 가장 인기가 높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저녁 시간대 인기가 높다”며 “점포 주변에 빌딩이 많은 서울 강남점 같은 곳에서 2030 직장인이 저녁 강의 등록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부터 저녁 6시 뒤 문화센터 강의를 지난 여름학기보다 30% 늘렸는데, 수강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0% 이상 늘었다. 특히 미술이나 필라테스 등 선호도가 높은 취미 강의를 1회로 진행하는 ‘원데이 특강’은 수강생의 52%가 2030세대였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취미 찾기’ 바람이 불면서 퇴근 뒤 문화센터를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도 2030 직장인을 위한 워라벨 강의를 지난해 대비 50% 늘렸다. 대부분 운동 위주였던 강의도 메이크업이나 재테크 등으로 다양화해 문센족 입맛을 겨냥했다.
주요 백화점들이 앞다퉈 문센족 잡기에 나선 것은, 문화센터 수강생들이 백화점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있어서다. 신세계의 경우, 최근 인기가 높은 필라테스가 5회에 5만원, 요리 교실이 재료비까지 포함해 6만~7만원 정도다. 시중의 일반 학원보다 저렴한 편이다. 각종 비용을 빼면 문화센터 운영은 오히려 적자에 가깝지만 백화점이 이를 유지하는 것은, 문화센터 수강생이 결국 백화점 고객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 백화점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한 문화센터 입지상, 수강생들이 오르내리면서 쇼핑을 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신세계 쪽 자료를 보면, 일반 고객의 백화점 이용 횟수가 한 달 평균 1.2회지만 문화센터 등록 수강생은 한 달 평균 8차례 쇼핑을 해 6배가 넘는 이용 빈도를 보였다. 1년 동안 백화점에서 쓰는 액수가 2천만원이 넘는 브이아이피(VIP) 고객의 비중도 문화센터 수강생이 일반 고객보다 8배 높은 것으로 나왔다. 문센족이 백화점 입장에선 ‘큰손’인 것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여름 휴가철은 예전부터 백화점 비수기였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과 폭염으로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백화점 문화센터를 신규 고객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문센족 마케팅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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