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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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몇 달 전 이동전화에 가입했다. 그런데 단말기 불량으로 3번이나 수리를 받아도 고쳐지지 않아 기기 값을 환불받았다. 하지만 이동전화 업체는 ‘6개월로 돼 있는 의무사용기간을 채우지 못했다’며 해지 처리를 해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김씨는 단말기도 없는 상태에서 월 기본료를 물고 있다.
대구에 사는 박아무개씨는 이동전화 해지를 신청했으나 ‘우리 대리점에서 가입한 게 아니라서 해지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대리점 직원은 “가입한 대리점에서만 해지 처리가 가능하다”며 “해지하려면 그 곳에 가서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입한 대리점에 갈 시간이 없어 이동전화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해지를 못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전화로 초고속인터넷 해지 신청을 한 뒤 상담원의 요구에 따라 신분증 사본을 팩스로 보내줬다. 신분증 사본을 보고 가입자 본인이라는 게 확인되면 신청한대로 해지 처리하고 결과를 통보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해지가 안된 채 요금이 계속 청구되고 있다.
통신위원회에 신고된 해지 관련 이용자 피해사례 가운데 일부다. 고객들에게 “가입은 당신 맘대로 했으나 해지는 당신 맘대로 못한다”고 협박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통신위가 이용자 민원을 분석한 결과, 통신업체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들의 해지를 제한하거나 지연시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례는 2004년 636건에서 지난해에는 11월까지 집계된 것만도 891건에 이른다.
정보통신부에 신고된 통신서비스 이용약관을 보면, 통신업체들은 가입 신청을 받고 있는 지점 및 대리점 모두에서 해지 신청를 받고 또 처리해줘야 한다. 또 의무사용기간을 빌미로 해지를 지연할 수 없으며, 이용자가 직접 방문한 경우는 물론이고 전화나 팩스·우편으로 해지 신청을 해도 처리해줘야 한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들이 1~3년 이상 사용하겠다고 약속해 요금을 할인받다가 이사 때문에 해지하는 경우, 이사를 간 곳이 해당 업체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해지할 때는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경우에도 위약금을 요구하며 해지를 미루는 것은 요금 부당 청구 행위에 해당한다.
통신시장의 포화로 신규 가입자 유치가 힘들어지자, 가입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가입자를 붙잡아야 하는 통신업체들의 처지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막무가내식 행태를 보이는 것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오죽 심하게 했으면, 통신위가 이용자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피해를 당했을 때는 통신위(국번없이 1335번)에 신고하라는 민원예보까지 발령했을까.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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