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가 20일 경기도 용인 하이트진로음료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음료 제공
조운호(58)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의 수식어는 ‘음료계의 미다스 손’이다. 조 대표가 웅진식품 재직 시절 내놓은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의 잇따른 성공이 가져다준 이름이다. 그런데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 하이트진로음료 본사에서 만난 조 대표는 ‘우노운호’라는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란 ‘명언’을 남긴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에서 따온 것으로, 조 대표가 트위터를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누리꾼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트위터에서 별명을 몇 개 얻었죠. 운호 삼촌이라고도 하고, 운호 할아버지라고도 하고. 트위터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 공간인데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10대, 20대와 ‘내적 친분’(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온라인 등을 통해 친근하게 느끼는 것)을 쌓으면서 서로가 ‘찐’(진짜배기의 줄임말)이라는 걸 확인하니까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통하더군요.”
한 누리꾼과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의 트위터 대화 갈무리
조 대표는 10대, 20대가 자주 쓰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말했다. ‘우노운호’ 조 대표는 트위터에서 특히 ‘블랙보리 사장님’으로 통한다. 2017년 조 대표가 하이트진로음료 대표로 부임하고 내놓은 첫 번째 음료인 블랙보리와 관련해 트위터에서 조금이라도 언급이 나오면, 조 대표가 직접 답을 해주거나 ‘마음에 들어요’를 눌러준 게 계기였다. 이런 작업이 1년째 이어지면서 일부 누리꾼은 “진짜 사장님 맞냐, 회사에 전담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도 보낸다. 조 대표는 “나는 피시(PC)통신 시절부터 싸이월드, 블로그, 인스타그램까지 다 직접 했다”며 손을 내저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차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합니다. 계속 휴대전화를 쳐다보니까 눈도 아프고, 밤엔 잠을 자야 하는데 (트위터 사용자들에게) 반응을 안 해주면 서운해할까 봐 잠을 설치면서 하기도 해요. ‘현장경영을 해라’, ‘소비자의 마음을 알아라’라고들 하는데, 이 현장만큼 소비자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우리 제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와 직접 통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는 일이라 푹 빠져있습니다.”
조 대표는 은행원에서 시작해 음료회사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어렸을 때 법관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턴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상고를 나와 은행에 취업했지만, 몇 년 뒤 “병참부대가 아닌 전투부대로 가고 싶어서” 웅진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5년, 그의 음료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너무 놀랐어요. 당시 어느 정도는 음료 시장이 포화상태였는데 그때까지 ‘우리 음료’ 개념이 없었어요. 오렌지 주스, 커피, 콜라 이런 것밖에 없는 거예요. 대기업 음료 회사들이 외국에 로열티를 주고 판권을 사 와서 한국에 보급하는 형국으로 (한국 시장은) 세계 음료의 각축장이었죠. 그때 ‘우리 음료’를 만들어야겠다는 소명감이 생겼습니다.”
그에게 ‘음료계의 미다스 손’이라는 별칭을 갖게 해준 한국식 음료들은 웅진식품 재직 시절에 탄생했다. 1999년 ‘밥 같은 음료’를 찾다 만들어낸 아침햇살은 출시 10개월 만에 1억병 판매고를 올렸고,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매실을 먹어왔다는 점에서 착안한 초록매실은 같은 해 출시 7개월 만에 1억병을 팔며 아침햇살의 기록을 경신했다. 2000년 출시된 하늘보리는 한동안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정수기 보급으로 물을 직접 끓여 먹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2000년대 중반 연 매출 100억원어치를 팔아 뒤늦게 성공한 음료 반열에 올랐다. 현재는 연 매출 300억원으로 보리차 시장 점유율 1위다. 이후 롯데칠성 ‘황금보리’, 씨제이(CJ)헬스케어의 ‘새싹보리차’ 등이 출시됐지만, 지금도 60% 안팎인 하늘보리의 점유율을 넘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조 대표의 이력 때문에, 2017년 조 대표가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에 취임한 뒤 검정보리를 로스팅한 블랙보리를 내놓자 업계에서는 하늘보리를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다. 블랙보리는 검정보리를 로스팅해 일반 보리차보다 향이 진한 게 특징이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전작이자 경쟁사 제품인 하늘보리를 뛰어넘는 것일까. 조 대표는 “블랙보리의 경쟁상대는 (하늘보리가 아니고) 콜라”라는 대답을 내놨다. 조 대표는 “130여년 전 처음 콜라가 만들어진 뒤 콜라는 미국의 아이콘이었는데 최근에는 카페인과 설탕에 대한 경각심으로 미국 학교 안에서 콜라를 판매하지 않는 등 기피 음료가 됐다”며 “앞으로 세계적인 음료 트렌드는 ‘노 카페인, 노 슈가’가 될 것이고 이건 한국의 곡차가 최고”라고 말했다.
시장의 상황은 나쁘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해 발간한 ‘2019 가공식품 세분 시장 현황’ 보고서를 통해 “최근 전 세계 음료 시장의 주요 키워드는 ‘건강 기능성’”이라며 “미국 소비자들이 탄산음료의 대체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블랙보리는 조 대표의 바람대로 탄산음료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블랙보리는 출시 2년째인 지난해 12월까지 누적판매량 9천만병을 올려 1억병 판매를 바라보고 있다. 조 대표는 “3월쯤 미국 유기농 마트인 ‘트레이더 조’에서도 블랙보리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블보 덕후’라고 칭하는 조 대표는 올해 블랙보리 못지않게 토닉워터에도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1976년부터 하이트진로음료에서 내놓고 있는 토닉워터는 지난해 깔라만시맛, 사과맛 등으로 추가 출시됐고, 회사는 소주에 토닉워터를 섞어 마시는 ‘소토닉’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조 대표는 토닉워터에 대해 “지금은 매출 130억원 정도이지만 향후 1조원까지도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조 대표는 “저도주 시대,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저녁에 술 마시는 자리가 줄고 홈파티, 혼술이 늘면서 맛도 있고 멋도 있는 음주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만약 (소토닉이 유행해) 소주를 파는 식당과 술집 50만 곳의 냉장고에 토닉워터가 들어가서 하루에 10병씩만 팔려도 5백만개가 팔리는 셈이므로, 발상을 바꾸면 1조원 시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5~10년은 걸리겠지만, 올해 토닉워터 출시 후 처음으로 광고도 준비하고 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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