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봉제업체 리오네에서 직원들이 동대문 의류시장에 보낼 옷을 만들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서울 금천구에 터 잡은 그린상사 김정중 대표는 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업체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지컷’의 바지와 치마를 주로 만들다 물량이 줄자 지난 2월부터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봉제업체를 운영한 지 17년이 흘렀지만 마스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동대문 의류시장과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발주를 받아 옷을 만드는 봉제업체들이 면마스크와 방호복을 만들며 겨우 연명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의류산업이 위축돼 발주 물량이 줄자 선택한 살길이다. 그린상사에는 한달에 평균 30종류의 브랜드 의류 봉제 주문이 들어왔다고 한다. 코로나19 한파 속에 의료 봉제 주문은 5종류로 뚝 떨어졌다. 청와대와 구로구청·금천구청 등 정부·지자체와 일반 회사, 캐나다 수출용으로 면 마스크 발주가 들어와 폐업은 간신히 면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옷 만드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한다. 의류 봉제가 훨씬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필터를 끼우는 면 마스크 하나 봉제하는 데 평균 30분이 쓰이는데 공임비는 1600원이라고 한다. 의류 봉제에는 한 벌당 3~6시간가량 걸리지만 공임비가 2만원이다. 김 대표는 “평소 객공(프리랜서 직원)을 5~8명 썼는데 현재는 1명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50명 남짓 고용하고 있는 등 비교적 규모가 있는 봉제업체 샬롬패션은 지난 4월부터 하루 2000~3000장씩 방호복을 만들고 있다. 엘에프(LF) 닥스 레이디스, 아떼 바네사브루노 등 브랜드 제품 상의를 주로 만들던 업체다. 코로나19 이후 의류 발주가 전년 대비 70%가량 줄자 주요 품목을 방호복으로 바꿨다. 이 업체의 윤명희 대표는 “방호복이라도 주문이 들어오니 다행”이라면서도 “방호복은 길이도 길고 모자와 지퍼가 있어 만들기 까다롭다. 하지만 방호복을 만들려는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임비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가 방호복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4300~4500원 정도였던 공임비는 현재 3200~3600원으로 낮아졌다. 자금 여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량 주문을 넣었던 방호복 업체 중엔 자금이 말라 대금 결제를 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고 한다. 윤 대표는 “방호복 5~6만장을 납품했는데 대금 2억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세 봉제업체들은 방호복 일감을 받기도 어렵다. 대량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설비와 인력 등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대문 의류시장 등에 옷을 납품하는 봉제업체 리오네의 최호근 대표는 지난 1일 <한겨레>와 만나 “마스크는 몰라도 방호복은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의류 발주량이 40% 이상 줄었다. 직원 월급도 70~80만원 정도 덜 주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과 거래하는 일부 봉제업체는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매출 늘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몰 한 곳과 8년가량 거래한 봉제업체 락어패럴은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전인 지난 1월에 비해 2월 이후 월 매출이 평균 10%가량 늘었다. 이상태 락어패럴 대표(한국봉제패션협회장)는 “온라인 쇼핑몰과 직접 거래하는 봉제업체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며 “중국에서 원단과 부자재 수급이 어렵고 샘플을 떼가는 중국 의류판매업자도 못 들어오는 데다 내수도 침체돼 문 닫는 봉제업체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