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물질은 문명과 함께 진보해왔다. 여러 물질은 군락과 도시를 형성하고 전쟁이나 무역 등 국가의 흥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자원이 되었다. 생존을 위해, 또는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우연히 발견한 물질은 가공하고 응용하는 기술을 만나 하나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만약 인류가 천연자원과 농산물만 이용하면서 살아왔다면 첨단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지금 세상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게 급변하는 최첨단 시대에 물질의 근원을 찾아가는 역사적 여정은 어쩌면 고리타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모든 것이 물질로 이루어졌다. 출근길에 탄 지하철,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전화, 업무에 꼭 필요한 인터넷과 컴퓨터, 자동차와 비행기, 여가로 즐기는 테니스 라켓, 커피가 든 플라스틱 용기 등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미국 코넬대학에서 재료공학을 연구한 저자는 교통·통신·건축·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필수적인 물질들의 역사를 좇는 여정에 ‘과학’을 한 스푼 집어넣어, 독특한 시각으로 물질과 문명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그는 돌·점토·구리·청동 등 고대에 발견한 물질부터 시멘트·실리콘·폴리머 등 현대에 발견한 물질까지, 과학 원리와 기술이 만나 역사를 이끌어낸 진보의 과정에 주목한다.
문명과 물질의 상호관계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특정 시대를 지칭하는 역사 용어에 물질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물질과 인류의 문명사는 서로 맞물려 있다. 예컨대 철의 발견은 가마 온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게 했고, 가마 온도가 높아지자 유리를 다루는 기술도 같이 개발됐다. 유리는 희귀품에서 일상품이 되었고,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창문을 선사했다.
그리스는 아테네의 은광 덕분에 페르시아가 에게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며, 로마의 알렉산더대왕은 트리키아에서 추출한 금으로 전대미문의 제국을 건설했다. 중국에서 발명한 종이, 나침반, 화약은 무역과 탐험이 가능한 세계로 전환시켰다. 16세기 남아메리카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차지하려던 스페인의 정복 활동에 최적지였다. 근대의 영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했는데 이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금세기에 일어난 물질 혁신의 중심지이자 실리콘, 광섬유 기반의 컴퓨터와 정보혁명의 본거지로 거듭났다. 이처럼 인류를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하는 문물이 탄생할수록 물질과 문명은 더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다가올 문명을 바꿀 물질의 재발견
혁신적인 물질의 발명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자본’ 시스템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강철은 1800년대 고층건물 시대를 열었고, 자동차 제조업 등 여러 산업이 새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유리섬유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의 과학자가 개발했는데 폭격기용 항공 레이더의 덮개인 레이돔 재료로 제작됐다. 특히 복합재료는 특성이 복잡해 제작하거나 적용하는 데 다양한 어려움이 따르고, 개발하는 데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보상도 확실하기에 철강이나 항공 등 현대의 상업회사는 큰 비용을 들여서라도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는다.
짧은 시간에도 세상은 크게 바뀐다. 이미 실리콘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유리섬유는 구리 전선을, 제트엔진은 피스톤 엔진을 대체했다. 탄소섬유로 강화한 테니스 라켓과 낚싯대는 여가생활을 바꿔놓았고, 세라믹과 금속으로 만든 관절은 인체 관절을 대체하며 의학계를 변화시켰다.
누구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면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가장 동떨어져 있고 가장 이질적인 것들의 힘”을 하나로 결합해야 한다. 문명은 항상 그런 능력에 의지해왔다. 지금도 비행기나 자동차를 만드는 산업에선 소재의 경량화, 높은 효율 등을 위해 복합재료를 계속 실험해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 분야에선 전자부품을 초소형화해 모터와 센서 같은 기계장치를 작게 제작하는 작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명과 물질의 역사를 읽으면서 미래 물질이 바꿔놓을 새로운 차원의 문명을 상상해보길 권한다.
신민희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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