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배후 물류단지에 있는 ‘칼트상용화주터미널(CSRT)’에서 직원들이 수출될 항공화물을 분류, 재포장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터미널에는 보안검색대를 갖추고 있어 재포장된 상태 그대로 별도의 보안 검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비행기에 싣게 된다. 김영배 기자
널찍한 창고 안에서 빨간 색깔의 지게차 여러 대가 사방으로 바삐 오갔다. 지게차 밑부분에서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포크(발) 두 갈래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운전자 조작에 따라 지게차 포크가 팔레트 구멍에 맞춰지고 팔레트와 함께 그 위에 쌓인 물품 상자 묶음이 통째로 번쩍 들렸다. 창고 앞 야적장에 부려진 물품 상자들은 지게차의 움직임에 따라 차례차례 다음 단계의 작업 과정으로 나아갔다.
지난달 29일 현장에서 만난 강신범 팀장(칼트상용화주터미널 영업팀)은 높다란 천장의 창고 내부를 가리키면서 “(바닥 면적이) 2천평가량 되고 절반은 일반 구역, 나머지 절반은 보안 구역”이라고 했다. 일반 구역과 보안 구역 사이에는 보안 검색대가 설치돼 있다. 보안 구역으로 들어가려면 미리 발급받은 출입증을 제시해야 하며 신상을 적어내게 돼 있었다. 비행기 탑승 전 거쳐야 하는 보안 검색대와 동일한 구조다.
창고 밖 출입문 위쪽에는 ‘칼트상용화주터미널’(CSRT)이라고 표시돼 있다. 시설을 소개하는 카탈로그에 “비행기로 수출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한국도심공항(주)의 물류 인프라”라고 씌어 있었다. 칼트상용화주터미널은 한국도심공항과 스위스포트코리아 합작으로 설립된 수출 지원 전문 물류 업체다. 한국도심공항 쪽은 “(이 터미널이) 수출 화물의 접수부터 항공사 인도까지 전 과정을 대행한다”며 “항공사와 수출(대행·운송) 기업 간 교량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칼트’(CALT)는 무역협회 출자로 설립된 한국도심공항의 영문 이름이다. 코로나19 사태 뒤 여객기를 통한 화물 수송이 급증함에 따라 터미널의 비중도 덩달아 커졌다.
창고 곳곳에 쌓인 물품 상자에는 손바닥 절반 크기의 종이쪽지(라벨)가 붙어 있고, ‘TURKISH AIRLINES’ ‘235-XXXX-1910’ ‘ICN’ 같은 글귀가 담겨 있었다. 강신범 팀장은 물품 상자의 라벨을 가리키며 “어떤 물건이고, 수량은 얼마인지, 어느 공항에서 어느 비행기에 실려 어디로 도착하는지를 알려주는 정보”라고 말했다.
터미널 현장 반입 업무는 상용화주터미널 소속 전문인력인 ‘보세사’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일반 구역에 반입된 화물의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춰 수출 통관에 필요한 서류 작업이 이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보세’(보류 관세)는 수출입 과정에서 관세 부과를 유보 또는 보류한다는 뜻이다.
보세사 손을 거친 물품 상자 묶음은 바로 옆에 설치된 대형 저울로 옮겨진다. 화주 쪽에서 말한 무게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무게 측정, 화물 재정리 작업에 이어 보안검색이 이뤄진다. 위험성을 띤 화물을 걸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이 터미널에서 처리되는 물품은 거의 다 여객기에 실리기 때문에 항공보안법에 따라 100% 엑스레이 검사를 거치게 된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안전한 것으로 확인된 물품 상자 묶음에는 보안 확인증(시큐리티 체크)을 붙인다.
보안 검사 뒤 이어지는 작업 과정은 ‘비유피’(BUP·Bulk Utilization Program) 조업으로 불린다. 이 터미널의 특징이자 차별점이다. 비행기 틀에 맞게 물품 상자들을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다. 짐을 싣는 여객기 ‘벨리’(하부 화물칸)의 크기와 모양 때문에 필요한 작업이다. 물건 묶음은 대개 가로 2.2m, 세로 3.1m, 높이 1.6m 크기로 꾸려진다. 화물칸 규모를 고려해 높이를 1.8m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화물칸에 바로 실을 수 있는 모양으로 쌓은 물품 묶음에는 그물을 치고 랩을 씌운 뒤 칼트상용화주터미널 고유의 빨간색 테이프를 붙인다.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이동환 디지털마케팅실장은 “비유피 작업을 하면 물건을 알뜰하고 효율적으로 실을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여객기를 화물용으로 전환해 활용하는 일이 많아져 필요성이 커진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무역협회 출자사인 무역정보통신은 국가 전자무역 기반 사업자로 지정돼 있다. 수출입물품 통관 때 칼트 등 물류센터와 운송업체, 항공사 사이에 오가는 각종 서류를 전자적으로 처리해주고 수출업체와 공급업체 간 비투비(B2B) 업무, 수출입 대금 결제 등 무역업무 전반을 전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전문 기관이다.
칼트상용화주터미널은 항공사 터미널 외부에서 여객기용 탑재화물의 보안검색 및 비유피 조업을 통해 항공사에 반입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시설이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외 항공사들은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지역’에서 비유피 작업을 한다. 칼트터미널은 인천공항 배후 ‘공항물류단지’에 들어서 있다.
비유피 과정을 거친 수출품은 롤러가 설치된 자동 작업대(‘오토 롤러 베드’)에 올려진다. 재분류, 재포장을 거쳤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무게를 재고 최종적으로 다시 라벨을 붙여야 한다. 물품 묶음은 롤러를 타고 보안트럭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트럭 바닥에도 롤러가 설치돼 있었다.
트럭에 실린 물품이 항공사 쪽에 넘겨지기 전 중요한 절차가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물류단지에서 항공기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한 확인 과정이다. 보안을 위한 실마리는 트럭 뒤편 문에 설치된 자물쇠이며 이를 ‘보안 씰’이라 한다. 한번 훼손하면 다시 못 붙이도록 해 보안 장치로 활용했던 예전의 실물 ‘씰’(seal)에 뿌리를 둔 전자 씰이다.
자물쇠를 채우는 순간 여기에 설치된 디스플레이 장치에 ‘1234’처럼 비밀번호 네 자리가 뜬다. 칼트상용화주터미널 쪽에선 이 숫자를 포함한 보안각서를 작성해 보안교육 이수 직원에게 넘기고 담당 직원은 이를 항공사에 제출한다. 항공사 보안 요원은 보안각서에 적힌 비밀번호와 보안 씰에 뜨는 비밀번호를 대조 확인한다. 이 과정을 거친 뒤 트럭 운전사가 지문 인식기를 통해 문을 열게 된다. 칼트상용화주터미널의 수출 지원 업무는 여기서 마무리된다.
터미널 업무의 전체 과정은 바로 위층(4층)에 있는 종합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방문 당시 8개의 디스플레이가 상황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강신범 팀장은 “현장에 시시티브이(CCTV)가 60개 정도 설치돼 있고 화면을 바꿔가면서 살펴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고 있다”며 “(영상 기록물은) 최소 6개월 동안 보관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배후 물류단지에 있는 한국도심공항(주)의 물류센터 ‘칼트로지스’ 밖 야적장에서 물품 상자 묶음을 트럭에 싣고 있다. 여기서 처리된 물품은 비행기에 싣기 전 보안검색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 한국무역정보통신 제공
경기 회복세에, 코로나 사태 뒤 항공편을 통한 수출 증가로 칼트터미널의 손길이 바빠졌다. 칼트상용화주터미널 쪽은 “처리물량이 10월에 2800장(BUP 조업 거친 물품 덩어리) 정도에 이르고 11월엔 2900장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비유피 1장당 무게는 2t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항공화물 수출 단가 평균치(지난해 기준 ㎏당 323달러)를 고려하면 비유피 1장은 65만달러(한화 7억6천만원)어치에 해당한다.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항공화물 수출은 1830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35.7%였다. 역대 최고 비중이다. 해상화물 수출 비중은 64.2%였다. 올해 들어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1~9월 해상, 항공화물 수출 비중은 각각 64.7%, 35.2%였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강성은 연구원은 “항공 수출 증가세는 비대면 경제활성화로 인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 호조,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 증가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했다. 수출품의 고부가치화도 항공 수출을 늘린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항공화물 수출 단가는 지난해 기준 ㎏당 323.02달러로 사상 처음 300달러를 넘었다. 2019년엔 278.69달러였다. 해상화물 수출 단가가 2019년 ㎏당 1.87달러, 2020년 1.73달러로, 2017~2018년(2.00달러)보다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항공화물 수출의 대부분은 인천공항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항공 수출 중 99.7%에 이르는 1825억달러어치가 인천공항을 통해 빠져나갔다. 김해공항, 김포공항을 통한 항공화물 수출은 미미한 편이다. 인천공항 배후 물류단지에는 칼트상용화물터미널 외에 한국도심공항과 얽힌 물류센터가 한 곳 더 있다. ’칼트카고서비스센터’이며, 이 시설은 칼트상용화주터미널과 달리 도심공항 쪽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항공기에 싣기 전 물품을 보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화물 전용기에 실리는 화물에 대한 엑스레이 사전 검색과 비유피 조업이 가능하다.
한국도심공항 곽호종 상무는 “9월 들어 (칼트상용화주터미널에서) 처리한 물량이 8월보다 5%가량 증가했고, 10월에도 전월대비 23% 늘었다. 11월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심공항 쪽은 “사실상 맥스 캐파(처리 한도)에 이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항공화물 수출에서 칼트상용화물터미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수준이다. 여객기 화물칸에 싣는 것만 따지면 비중은 20~25%로 올라간다. 한국도심공항 외에도 항공 수출을 지원하는 기업이 여럿 있다. 씨제이(CJ)대한통운, 에이케이(AK), 한진, 우정항공 등이다. 인천공항 물류단지에는 모두 38개사가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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