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새 정부 미래먹거리 분야 국가전략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가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한해 감세를 추진한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낸 가운데 감세를 위해 제시한 근거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에 바탕을 둔 조세 정책 수정이 아닌 밀어붙이기 대기업 감세가 아니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5일 반도체 등 6대 주력산업에 대한 지원 계획을 내놓으면서 언급한 미국 사례다. 안 위원장은 “반도체의 경우 미국 등이 굉장히 강하게 인센티브 주고 있다”고 운을 뗀 뒤, “미국은 투자비 25%까지 세액공제를 해주는데 우리나라는 (공제율이) 3%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부분에 대한 정책이 (우리나라도) 따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와 전문가들은 안 위원장이 사실을 오인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일단 독일과 일본은 반도체 시설투자비에 세금을 깎아주는 세액공제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관련 법(FABS·Facilitating American-Built Semiconductors Act)을 발의했을 뿐이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설투자 장려를 위한 세액공제를 40%까지 해주겠다는 법안(CHIPS ACT)은 폐기됐고, 25% 법안(FABS)은 의회서 논의 중인데 입법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일찌감치 해당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세법을 바꿔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 제조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추가 확대했다. 반도체와 바이오, 미래차, 첨단 소재·부품·장비 등 13개 분야를 신성장·원천기술 기업으로 지정해 일반 세액공제율보다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해 온 것을 다시 한 번 반도체·배터리·백신 3개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는 얘기다.
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는 미국 등 주요국도 운용하고 있지만 공제율은 한국이 지원 폭이 좀더 큰 편이다. 미국은 전년 대비 늘어난 연구개발비의 20%를 세금에서 빼주지만 한국은 늘어난 연구개발비의 최대 40%까지 세금을 공제해준다.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 당시 국가전략기술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에 따라 세수가 연평균 1조2천억원 줄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만큼 해당 기업들의 세 부담이 준다는 얘기다.
특정 산업을 겨냥한 세액공제 확대가 투자나 고용 증대로 이어진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조세 지원이 기업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돕고 리스크 분담을 위한 것인데, 특정 기술을 대상으로 이를 확대하면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며 “과거 연구에서 신성장·원천기술을 상대로 한 세액공제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반 세액공제율을 상향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정말로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이는 재정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기재부 관계자는 “세액공제 등 지원을 하면 기업에 도움이 안될 리는 없지만, 투자나 고용 확대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 줄여주는 효과만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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