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새 정부 국정과제 운영 방안을 두고 209조원 재원 마련 계획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산업정책 역시 새 정부의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표 없이 부처별로 기존 정책을 이어받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4일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 가운데 산업정책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것을 계승한 경우가 많다. ‘역동적 경제’ 대목을 보면,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과 배터리 등 미래전략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케이(K)-반도체전략’ 등을 통해 밝힌 세제지원, 인재양성 등과 별 차이가 없다. 반도체 수출액을 2027년 1700억달러(국정과제), 2030년 2천억달러(케이-반도체전략)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시기에서 약간 차이를 보일 뿐 같은 추세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증권사 반도체 전문 분석가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방한해 국내 반도체 공장을 들르는 등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경제 안보가 매우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 없이 기존 정책을 되풀이하는데 그쳤다”고 짚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등 핵심 품목을 자국에서 생산토록 하는 흐름이 강해지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새로 만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함께 대응에 나서고 있다.
친환경 전환 차원에서 2020년부터 산업단지 내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는 내용의 ‘클린팩토리 구축’(2025년 1800개) 사업도 마찬가지다. 당시는 2025년까지 1750개가 목표였는데 50개를 늘린 게 전부이다. 디지털 혁신을 위한 제조현장의 로봇 개발·보급,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의무 강화, 저탄소·무탄소 선박 개발 등도 이미 추진하던 것들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안에서도 기존 정책의 ‘재탕’이란 말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인수위에 산업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다 보니 기존 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윤석열 표’ 큰 그림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등을 내세우고 협업 과제를 제시했는데,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선 이런 큰 틀의 지향점을 찾아볼 수 없다.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나라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문제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며 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은 제시했지만, 이를 통해 어떤 목표를 달성할지는 내놓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부 관계자는 “저출산·고령화나 지역균형발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뿐만 아니라 교육, 복지, 인구 정책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며 “110개 국정과제가 부처별 ‘나눠먹기’식으로 채워져, 이런 문제에 대한 방안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평소 ‘부처간 칸막이’ 해소를 강조했는데, 정작 발표한 국정과제는 이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수위에 참여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국정과제는 새 정부가 5년 동안 꼭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인데,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나열형으로 국정과제를 발표해,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