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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아랍의 봄’은 식품기업 담합에서 시작됐다

등록 2022-08-17 14:00수정 2022-08-17 14:13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
자크 페레티 지음 | 김현정 옮김 | 문학동네 | 1만7500원
2014년 1월26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제헌의회 의원들이 새 헌법 채택에 환호하고 있다. 새 헌법 채택 등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가 9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튀니스/AP 연합뉴스
2014년 1월26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제헌의회 의원들이 새 헌법 채택에 환호하고 있다. 새 헌법 채택 등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가 9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튀니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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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 또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국가, 정부, 정치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꾸준한 기술 발전과 세계화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각국 정부의 영향력과 권력이 점점 비즈니스 세계로 이동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탐사보도 전문기자 자크 페레티는 이런 변화의 흐름에 주목했다.

페레티는 세상을 바꾸는 건 더 이상 정책이나 정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비즈니스 딜’이라고 말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부실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대공황이 실은 에이즈 환자를 위한 대출상품에서 파생됐다거나, ‘아랍의 봄’이 밀을 공매도하기 시작한 식품업계의 담합에서 촉발됐다는 식이다.

 공매도와 ‘아랍의 봄’

2010년 12월17일, 튀니지에서 과일노점상을 하는 스물여섯 살의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식료품 가격 인상에 절망한 나머지 주정부 청사 앞에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분노한 튀니지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아랍의 봄’의 시작이었다. 아랍의 봄은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 리비아, 예멘까지 도미노처럼 북아프리카 각국 정부를 차례로 무너뜨렸다.

서구에선 아랍의 봄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랍의 봄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 이면에는 몇몇 대형 식품기업과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금융기법이 숨어 있었다.

1970년대 초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라는 두 경제학자가 오늘날 ‘블랙-숄즈 방정식’이라고 불리는, 옵션 가격을 산출하는 방정식을 도출해낸다. 이 방정식은 미래에 상품 가치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뿐만 아니라, 변동성이라는 위험을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스트리트는 블랙-숄즈 방정식을 기반으로 증권화가 가능한 모든 상품에 옵션거래를 도입했다. ‘공매도’의 탄생이었다.

2010년 곡물 수확량 예측을 어려워하던 곡물기업들이 공매도를 적극 활용했다. 흔히 묶어 ABCD라고 부르는 세계 최대 곡물기업들,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번지(Bunge), 카길(Cargill), 드레퓌스(Dreyfus)는 공매도로 밀 가격을 통제하려 했다. ABCD는 밀 가격 하락에 돈을 걸기 시작했다. 밀 수확량이 예상보다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종의 헤지 전략이었다. ABCD가 밀을 대상으로 공매도를 시작하자 밀의 가격 안정성이 사라져버렸고, 밀 가격은 수확량과 관계없이 계속 상승했다.

결국 밀 수입에 크게 의존하던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식량 시위에 그칠 수 있었던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난민을 태운 배가 지중해를 건너기 시작했고, 유럽 전역에서 반이민을 앞세운 정당들이 등장했다.

이 모든 일이 몇몇 곡물기업이 밀 가격을 놓고 공매도를 한 탓에 벌어졌다. ABCD는 위험을 가지고 말 그대로 위험한 게임을 벌였고, 패자는 자신이 게임에 참여하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 즉 북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블랙과 숄즈가 무책임한 금융기법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모든 비즈니스에 내재한 변동성이라는 위험이 금융시스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와 ABCD가 그 핵심을 교묘하게 활용한 셈이다. 페레티는 책에서 월스트리트가 공매도를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과 ABCD가 밀 가격을 놓고 공매도를 시작함으로써 벌어진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의 본질을 보여준다.

책에서 다루는 조세회피 담합의 시작, 페이팔과 디지털화폐의 탄생 등 10개의 딜은 단순히 기업 사이의 거래가 아닌 정치·사회적으로 우리 삶에 큰 변화를 남긴 것들이다. 비즈니스의 숨은 역사를 읽으며 현대 경제의 흐름을 읽는 새로운 시선과 포스트 세계화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통찰을 얻기 바란다.

신기철 문학동네 편집자 gooner@mun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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