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팔려면 맛보게 해야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디자이너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통역을 하는 사람이에요.”
산업 디자인계에서 알아주는 실력파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는 “디자인을 할 때 생산자의 메시지가 속속들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이렇게 소비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그가 디자인하고 이름까지 지은 상품들 가운데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게 많다. 지난 2월 초 나온 두산의 ‘처음처럼’ 소주를 비롯해 증류식 소주 ‘燒(화요)’, 두산 ‘산’ 소주, 진로 ‘참眞이슬露’ 소주, 한미 ‘콩豆’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두유인 ‘콩豆’는 콩 모양의 디자인으로 홍콩디자인센터가 주최하는 아시아 디자인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이 제품이 한국산이지만 다른 나라 소비자라도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콩 음료라는 점을 알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시와 글씨체를 따서 지은 ‘처음처럼’은 소비자들에게 소주 브랜드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참신함을 주어 호평을 받고 있다.
손 대표는 “기업 등 대상의 특징을 상징화하는 ‘아이덴티티 디자인(ID)’을 오랫 동안 해오면서 내공이 쌓인 점이 디자인과 브랜드 분야에서 인정받게 된 배경이 됐다”고 풀이했다. “대표적인 아이덴티티 디자인인 CI(기업 이미지 통합화 계획)와 BI(브랜드 이미지 계획)에선 로고와 심볼이 중요한데, 그게 일종의 기호라 언어와 쉽게 통하고 서로 치환도 되잖아요.”
디자인과 브랜드를 함께 해야 시너지가 생긴다고 믿는 그는 수주할 때 브랜드 이름만 정하는 작업은 가급적 피한다. “고기를 팔려면 고기가 신선하다고 말만 하는 것보단, 간을 해서 구운 뒤 맛을 보게 하는 게 효과적이에요. 브랜드도 마찬가지로 이름만 타이핑해서 보여주면 좋은지 잘 모르거든요.” 그는 “디자이너가 브랜드의 본질을 보여주는 디자인을 하려면 그 회사 직원보다 더 브랜드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며 “서류로만 공부할 게 아니라 상품과 소비자의 접점인 매장에 가서 철저히 시장조사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을 수식하는 단어에 ‘여성’이 붙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손 대표도 ‘여성’ 디자이너로서 인터뷰하는 건 탐탁해 하지 않았지만 여자 후배들을 위한 조언은 아끼지 않았다. “여성이라고 특별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말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남성들과 똑같이 경쟁하면 인정받는 날이 꼭 올 겁니다.”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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