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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빅뱅] ① 중국 상하이 클러스터
국내외 시장에서 기업들의 디자인 경쟁이 치열하다. 디자인 개발 능력이 1등 제품, 선진 기업으로 도약의 관건이 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가격, 성능에 이어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한겨레>는 세계시장에서 소리없이 벌어지고 있는 디자인 경쟁을 소개하고, 국내 디자인산업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연재를 싣는다.
“유럽에서는 냉장고 하나를 디자인하는 데 2년이 걸리지만, 한국과 일본은 1년 안에 해냅니다. 중국에서는 얼마나 걸립니까?” “저희는 90일 내에 한국보다 훌륭하게 해내겠습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드라마에 나오는 프랑스인 바이어와 중국 가전업체 관계자와의 대화다. 프랑스 바이어는 3달 뒤 견본을 보고 찬사와 함께 계약을 체결한다.
중국은 전세계 공장의 70%를 차지하는 거대한 산업기지임에도 그 동안 자체 브랜드와 디자인이 없어 ‘짝퉁 천국’ 으로 폄하돼왔다. 이곳에서 또 하나의 ‘문화혁명’이 태동하고 있다. ‘디자인 혁명’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10년 내 아시아 디자인 수도, 20년 내 세계 디자인 수도’라는 목표를 세운 야심찬 도시, 상하이가 있다.
디자인 클러스터만 50곳=상하이 시내 남동쪽의 타이캉루는 디자인 관련 기업 100여곳이 입주한 산업 클러스터다. 20년대 프랑스와 러시아인들이 넘쳐났던 이 거리의 새 주인은 디자인 회사들이다. 웃통을 벗어제낀 노인이 해찰중인 허름한 건물의 아랫층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차 한잔에 이야기꽃을 피우고, 골목에서는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상하이 정부는 2004년 11월 디자인, 건축, 패션 등 크리에이티브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결정하고 공장이 빠져나간 도심 곳곳에 클러스터를 키우기 시작했다. 현재 이런 클러스터는 상하이 전역에 50여곳나 된다.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들에게는 임대료와 세금 감면과 투자지원 혜택이 있다.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육성·지원을 맡고 있는 상하이창의산업중심 허쩡창 비서장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100여명을 유치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하이의 자신감 뒤에는 인근 장쑤성과 저장성을 잇는 거대한 제조업 기반이 있다. 자오퉁대 아시아디자인연구소 윤형건 교수는 “생산 기지가 바로 옆에 있으면 제품을 디자인하기에도 훨씬 유리하고, 그런 의미에서 상하이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전세계가 달려오는 기회의 땅=“산을 처음 봤을 때는 산이 아니고, 두번째 봤을 때는 산이다. 그러다 세번째 보면 다시 산은 없다(見山不是山, 見山是山, 見山不是山).” 상하이에 지사를 둔 아시아 최대 디자인 전문업체 노바디자인의 천원룽 사장은 중국, 한국, 유럽의 디자인 수준을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은 아직 디자인이 무엇인지 잘 모르며, 한국은 디자인을 알지만, 유럽에서는 디자인을 말할 필요가 없을 수준에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디자인의 발전 속도는 무섭다. 2000년 중국의 디자인학과 졸업생은 1500여명이었지만, 올해에는 무려 400여개 대학에서 3만여명을 배출한다. 명문 항저우 중국미술학원에만 6천명이 재학중이다. 이들의 초봉은 2500위안(3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최대 가전기업인 하이얼은 10년 전부터 일본 업체에 제품 디자인을 맡기며 자체 디자인 인력도 150여명으로 늘려왔다. 이런 노력으로 오늘날 하이얼은 세탁기 분야에서 독신자용 2㎏짜리부터 중동에서 인기있는 12㎏짜리까지 가장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상하이자동차와 지엠의 합작사인 파탁(PATAC) 역시 자동차의 기획부터 디자인, 성능 시험에까지 독자적인 역량을 갖춘 회사다. 이 회사는 2004년 중국인들이 물고기를 부와 연결시키는 데 착안해, 날렵한 물고기를 빼닮은 컨셉트카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출품했다. 중국 디자인의 약점으로 지적받는 ‘기획력’과 ‘철학’의 부재를 서서히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5년안 한국 따라잡는다”
한국 제품은 상표 떼면 못알아봐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디자인은 두려움보다 경원의 대상이다. 중국 디자이너들은 삼성, 엘지, 현대차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에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도 조만간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다. 엘오이 디자인의 양원칭 대표는 “한국 디자인은 아시아 시장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지만 정보통신 분야에만 집중돼있다는 한계가 있다”며 “현대자동차도 디자인은 탁월하지만 브랜드 마케팅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퉁지대학교 미술디자인학과 인정성 교수도 “삼성 제품에서 상표를 떼면 삼성인 줄 알아채지 못한다”고 뼈아픈 지적을 날린다.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디자인의 훌륭함보다 마케팅과 애프터서비스에 의한 것이 크다는 설명이다. 인 교수는 “제조업의 발전과 디자인 발전은 시차는 있어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속도라면 중국 산업 디자인이 5년 안에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상하이에는 일본 디자이너 100여명을 비롯해 영국, 미국 등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몰려들고 있다. 타이완이나 홍콩의 중소 디자인 업체들도 상하이에 진출해 급증하는 중국의 디자인 수요를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오는 11월 상하이에서 ‘디자인 코리아 2006’을 열어 한국 디자인을 중국인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세계 각국의 디자인 기술과 노하우, 인력이 축적되면서 상하이 디자인 클러스터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c상하이/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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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안 한국 따라잡는다”
한국 제품은 상표 떼면 못알아봐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디자인은 두려움보다 경원의 대상이다. 중국 디자이너들은 삼성, 엘지, 현대차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에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도 조만간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다. 엘오이 디자인의 양원칭 대표는 “한국 디자인은 아시아 시장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지만 정보통신 분야에만 집중돼있다는 한계가 있다”며 “현대자동차도 디자인은 탁월하지만 브랜드 마케팅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퉁지대학교 미술디자인학과 인정성 교수도 “삼성 제품에서 상표를 떼면 삼성인 줄 알아채지 못한다”고 뼈아픈 지적을 날린다.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디자인의 훌륭함보다 마케팅과 애프터서비스에 의한 것이 크다는 설명이다. 인 교수는 “제조업의 발전과 디자인 발전은 시차는 있어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속도라면 중국 산업 디자인이 5년 안에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상하이에는 일본 디자이너 100여명을 비롯해 영국, 미국 등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몰려들고 있다. 타이완이나 홍콩의 중소 디자인 업체들도 상하이에 진출해 급증하는 중국의 디자인 수요를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오는 11월 상하이에서 ‘디자인 코리아 2006’을 열어 한국 디자인을 중국인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세계 각국의 디자인 기술과 노하우, 인력이 축적되면서 상하이 디자인 클러스터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c상하이/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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