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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테크니컬 라이터’ 아세요?

등록 2006-09-04 20:06

경기도 분당 토필드 사무실에서 이호재씨가 자신이 작성한 제품 설명서를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분당 토필드 사무실에서 이호재씨가 자신이 작성한 제품 설명서를 보여주고 있다.
잘 쓴 설명서로 고장률 확 줄여
수출기업 희비 엇갈리자 관심 늘어
제품 설명서도 전문가 시대

“제품 설명서 하나만 잘 써도 고장률이 확 줄어든다는 거 아세요?”

이호재(36·사진)씨는 제품 설명서를 쓰는 테크니컬 라이터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경기도 분당에 자리잡은 중소기업 토필드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북유럽 등에 셋톱박스를 내다파는 토필드는 그를 채용하기 전 설명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라별로 상이한 방송 환경에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제품 설명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물건만 먼저 배로 보내고 뒤늦게 설명서를 비행기로 부치는 일까지 있었다.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이씨가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글 쓰기다. 그가 만든 설명서는 화려한 그림은 없지만 간결한 글, 깔끔한 그래픽,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색인 등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돈을 내야 풀리는 채널의 암호화를 뜻하는 ‘스크램블’보다 ‘유료 서비스’라는 표현이 낫죠. 소비자한테 도움이 되는 설명서는 각종 기능을 죽 나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제품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설명서입니다.”

그런 만큼 테크니컬 라이터에게는 글재주 이상이 요구된다. 제품 속에 들어간 기술을 정확히 이해해야 쉽고 정확한 글을 쓸 수 있다. 이씨의 책상에는 컴퓨터와 함께 회사에서 파는 셋톱박스와 회로 등이 눈에 띈다.


“처음 입사해서는 몇달 동안 셋톱박스를 안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여러 기능을 미리 써보고 개발 부서에 개선점을 건의할 수도 있고요. 이공계와 인문계 마인드가 다 필요한 분야입니다.”

현재 국내에 이씨처럼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이는 몇백명에 불과하다. 제품 설명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설명서 하나 때문에 수출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기업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유럽은 인건비가 비싸서 수리기사를 한번 부르기만 해도 10만원이 넘게 들어요. 그러다보니 고객들도 웬만한 고장은 직접 고칠 수 있게끔 한 친절한 제품설명서가 없으면 구매를 꺼릴 정도입니다.”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각종 법조문이나 설명서 등을 알기 쉽게 쓰자는 ‘플레인 잉글리시(Plain English)’ 운동이 법조문 개정까지 이끌어낸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앞장서 재미있고 알기 쉬운 설명서를 대거 만들어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 사용자가 제품 때문에 입은 신체 및 재산 상의 손해에 대한 책임을 제조업체가 지게끔 한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되면서 내수 기업들까지 설명서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있다. 외국에서는 유사한 법에 의거해 ‘설명서가 위험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는 소송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분사한 제품평가·설명서 작성 전문기업 테스코의 최형선 책임은 “선진국에서는 제품 개발 주기에 설명서를 제작하는 글쓰기 작업이 포함된다”며 “이는 제품 설명서를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제품의 일부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국내 제품 설명서 전문 기업은 10여곳으로 추산되며, 아직까지는 삼성과 엘지 등 대기업에서 분사한 곳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모인 TCN(cafe.daum.net/techwriters)와 KTCA(www.seri.org/forum/tcak) 등에서 교육과 취업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글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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