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4일 9년1개월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지자 수출 기업들에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지속적인 원화 강세로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출혈수출을 감내해오던 업계는 원.달러 환율이 속락하면서 원화강세의 기세가 꺾일 조짐을 보이지 않자 수출 채산성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해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경영혁신 등으로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특히 채산성 악화를 흡수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신규 수주를 포기하거나 수출을 아예 포기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내년 기준환율을 900원대 초반으로 정하고 사업계획을 짜고 있으며 환헤징, 환매칭 전략(Matching Strategy), 환변동보험가입, 결제통화 다변화, 현지생산확대, 내수판매 강화 등으로 환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는 또 원화강세로 채산성 악화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이를 체질개선 및 품질 경쟁력 확보의 기회로 활용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가는 장기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인해 세계시장에서 해외 업체와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내년 기준환율을 900원대 초반 수준으로 정하고 여러가지 환율 영향 등을 고려해 전략을 운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근본적으로 환헤징은 하지 않고 달러 수입과 지출을 일치시키는 '환매칭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결제 통화 다변화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환율 변동에 따라 회사의 환정책을 그때 그때 바꾸기 보다는 환율 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비용 절감, 공급망 관리(SCM) 확대, 거래통화 다변화 등을 포함한 근본적인 경영혁신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사업부별로 강세 통화로 결제하는 등의 노력 이외에 본사차원에서 목표를 설정해 특정 외환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계획은 세워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연간 영업이익에 2천억원 정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달러당 900원'에도 버틸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채산성 악화와 함께 환율문제가 거시경제 변화인 만큼 단위 기업의 개별조정이나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내수시장에서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를 확대해 나가고, 해외시장에서 달러 결제 외에 유로화 및 기타 통화로 결제통화를 다변화하면서 일본차 인센티브 확대에 대한 대응책 및 소형차 판매촉진 대책 등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현지생산 등으로 환위험을 최소화하고 현지경영을 통해 판매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체질개선의 기회로 활용, 기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는 원유 수입에 따른 외화 부채가 많다는 면에서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석유.화학제품의 경우 수출 비중이 절반을 상회하기 때문에 상당한 악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코오롱도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저환율은 당장 매출과 이익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적지않게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달러 외의 통화로 결제하는 등 여러 방식의 헤징을 통해 애로를 타개해 나갈 계획이다.
이들 회사 외에도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정유, 석유화학, 화섬업체들은 매출과 이익 감소 등을 우려하면서 내수활력 회복 등 탈출구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조선업계의 경우 현대 중공업은 환 위험에 노출된 외화의 경우 70% 이상을, 삼성중공업은 모든 외환거래를 선박 수주계약 당시 선물환 거래를 통해 헤징을 해 놓은 상태라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위험에 일단 여유로운 편이다.
다만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장래 수주계약의 채산성이 하락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환율 하락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LNG선이나 해양설비 등과 같은 비싼 선박을 수주해 많은 이익을 남기는 고부가가치 수주 전략을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머플러 구성부품 전문생산업체로 생산물량의 80%를 미국.유럽으로 수출하는 한 중소기업의 관계자는 "자재의 70-80%가 스테인리스인데 전량 고가의 한국산 자재를 쓰고 있는데다 자재값도 오르고 환율까지 떨어져 손해가 크다"며 "중국.인도의 저가 경쟁제품 때문에 이같은 부분은 단가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핵심 부품을 제외한 부분만 비교적 저렴한 수입 자재를 쓰는 방법으로 품질에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단가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중"이라며 "이 경우 4-5%의 단가 절감효과가 예상되지만 이같은 환율하락세가 지속되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경숙 기자 ksh@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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