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단계별 휘발유값 추이
주유소협회 “백마진은 허구”…석유협회에 반격
공공재 책임 강조한 ‘가격표시제’엔 신경 안써
공공재 책임 강조한 ‘가격표시제’엔 신경 안써
높은 기름값을 둘러싼 ‘네 탓 공방’(<한겨레> 6월11일치 3면)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주 정부와 정유업계가 각종 자료를 내놓으며 서로 ‘폭리 탓, 세금 탓’이라고 열을 올린 데 이어, 주말엔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가 휘발유의 공장도가격을 놓고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이런 공방 속에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실질적 논의는 실종되고, 특히 석유제품이 갖는 ‘공공적 성격’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지난 15일 한국주유소협회는 보도자료를 내 “정유사들은 영업 비밀 노출을 우려해 실제 공급가보다 높은 허위의 공장도가를 고시해 왔다”며 “존재하지도 않는 허수의 거래가를 기준 삼아 ‘백마진’ 같은 표현을 쓰는 건 책임 전가를 위한 핑계”라고 석유협회를 강력히 비난했다. 정유업계가 실제로는 공장도가보다 싼 값에 기름을 주유소에 넘기기 때문에 그만큼 주유소가 더 챙겨 간다는 주장을 편 데 대한 반박이다. 정유업계는 최근 정유사의 정제 마진이 커졌다는 정부 자료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주유소 쪽에 책임을 떠넘긴 바 있다.
주유소협회가 공개한 내부 통계를 보면, 정유사가 발표하는 공장도가에 비해 주유소 공급가는 ℓ당 40~60원 정도 싸다. 그렇지만 주유소 쪽은 실제 공급가를 기준으로 소비자가격을 책정하고 있으며, 국민감정과 주유소간 경쟁으로 실제 공급가 인상분을 모두 반영하지도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주유소협회의 정상필 팀장은 “2월과 5월 사이 정유사의 공장도가는 ℓ당 143원 올랐고, 주유소 공급가는 148원 상승했다. 그러나 주유소의 판매가는 135원 오르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또 인건비와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계산하면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24%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정유업계가 밝힌 정유 부문의 영업이익률도 1.6%에 지나지 않으니 외형적 수치로는 어느 쪽도 문제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마진이 50원이냐 100원이냐’는 식의 공방만 난무할 뿐 석유제품이 지닌 ‘공공성’을 고려하는 책임있는 자세는 정부를 포함해 그 어느 쪽도 보이지 않고 있다.
석유법과 시행령에는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석유제품의 가격 표시제를 시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가격 표시제를 시행하는 제품은 공산품, 의약품, 그리고 석유제품밖에 없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그 가운데서도 주간별 가격을 조사하는 건 석유제품뿐이다. 그만큼 석유제품은 시장의 상품인 동시에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기름값을 정해 발표하다가 1997년 완전히 자유화한 뒤에도 매주 ‘판매가격의 정기 조사’를 하도록 규정해놓은 건 이런 맥락이다. ‘시장 논리’만 좇아 석유제품의 가격이 무작정 올라가는 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시행령에 따르면 정제업자나 수출입업자는 한국석유공사에 공장도 판매가격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 가격 표시 요령 또한 글씨 크기부터 간판 위치까지 엄격하게 규정돼 있고, 소비자 불편·부당행위를 신고하는 소비자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단속권이 대부분 시·군·구에 있다는 이유로 주관 부처인 산자부는 제대로 된 통계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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