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 위기와 당시 다우지수 추이
①‘미국의 대치동’ 캘리포니아 부동산 흔들
②투자은행·헤지펀드로 부실 연쇄 확산
③유동성·인플레 압력으로 금리정책 한계
②투자은행·헤지펀드로 부실 연쇄 확산
③유동성·인플레 압력으로 금리정책 한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다우지수가 또다시 2.09% 급락하며 1만3181.01로 마감했다. 1만4000 고지를 돌파했던 지난달 19일(1만4000.41)부터 따지면 하락 폭이 5.8%에 이른다.
투자 분위기가 얼어붙으면서 이제 부동산 대출과 거리가 먼 우량 회사채 시장까지 맥을 못 추고 있다. 애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노출된 금융회사들이 많지 않아 파장이 제한적일 것이라던 예측과 크게 다른 모습이다. 현재의 상황을 두고, 저축대부조합이 줄줄이 파산했던 1986년 위기나 미국계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으로 시작된 1998년 위기를 떠올리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투자 자산 가치 하락→주가 급락→세계 금융시장 연쇄 위기’라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가 흔들린다=위기의 진원지는 미국 부동산 시장이었다. 2004년과 2005년 각각 11.8%와 13.3%였던 미국의 집값 상승률은 지난해 5.9%로 낮아졌다. 부동산 경기 둔화 추세는 올해 들어 더 뚜렷해졌다. 6월 신규 주택판매 건수는 584만4000채로, 2002년 8월 이래 가장 적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무자 연체율은 지난 3월 현재 13.8%에 이른다. 오는 10월부터 기존의 변동금리(ARM) 대출자들을 대상으로 분기마다 1천억달러 규모 이상의 금리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더 심각한 것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대출자에게서도 연체 및 환매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전체 모기지 대출의 30%가 집중된 캘리포니아 지역의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일구 랜드마크투신운용 본부장은 “캘리포니아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벤치마킹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마치 우리나라의 대치동 지역에서 연체가 늘고, 매물이 쏟아지는 꼴”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가라앉으면서 미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4%로 1분기(0.6%)보다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미국 경제를 이끄는 민간소비 증가율은 오히려 3.4%에서 1.3%로 뚝 떨어졌다. 고용사정도 나빠지고 있다. 3일 미국 노동부는 7월 중 비농업 분야 고용이 9만2천명 늘어나는 데 그쳐 지난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을 뺀 다른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는 건 사실이지만,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며 “과거의 위기 때와 달리 세계 경제를 이끌던 성장 엔진이 서서히 바뀌는 과정에서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를 키우는 첨단 금융 시스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고개를 든 뒤 금융시장이 맥을 못 추는 데는 첨단 금융 시스템도 한몫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한 대형 투자은행→등급 평가에 참여한 신용평가사와 시디오를 사들인 헤지펀드→헤지펀드에 돈을 빌려준 대형 상업은행까지 감염 경로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오석태 씨티은행 경제분석팀장은 “현 상황이 특히 불안한 것은 금융 시스템이 워낙 복잡해져 손실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서브프라임 모기지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도 손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쿼리은행은 계열 헤지펀드의 자산이 25%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펀드는 우량자산인 회사채 시장에 주로 투자하던 펀드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위험을 정교하게 분산시킬 목적으로 등장한 최첨단 금융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위기를 확대·전파하는 꼴”이라며 “2000년대 이후 신용파생상품 규모가 20조달러에 이를 만큼 성장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의 파장이 예상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동성 주기의 방향이 다르다=7월 중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 규모는 모두 980억달러로, 2004년 8월 이후 가장 작았다.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를 빼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치 기사에서 “유동성 경고의 벨이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크게 줄어든 것도 문제다. 86년 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미국 정부는 1천억달러 이상의 공적 자금을 쏟아부었다. 98년 당시엔 대형 은행 16곳이 350억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에 나섰다. 특히 과거 두 위기는 모두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여지가 컸던 기간에 벌어졌다. 금융시장이 빠르게 냉각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셈이다. 반면, 현재의 통화정책 환경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고유선 대우증권 거시경제팀장은 “지금은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과잉 유동성과 자산 가격 급등을 우려하고 있는 터라 당장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며 “금융시장이 부실의 틀을 털고 다시 건강을 되찾기까지는 당분간 고통스럽더라도 신용 경색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한 빌딩에 설치된 전광판에 3일(현지 시각) 큰 폭으로 떨어진 다우존스지수가 떠 있다. 이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신용 경색 우려가 커지면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281.42(2.09%) 급락한 1318.01로 장을 마감했다. AP 연합
위기를 키우는 첨단 금융 시스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고개를 든 뒤 금융시장이 맥을 못 추는 데는 첨단 금융 시스템도 한몫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한 대형 투자은행→등급 평가에 참여한 신용평가사와 시디오를 사들인 헤지펀드→헤지펀드에 돈을 빌려준 대형 상업은행까지 감염 경로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오석태 씨티은행 경제분석팀장은 “현 상황이 특히 불안한 것은 금융 시스템이 워낙 복잡해져 손실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서브프라임 모기지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도 손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쿼리은행은 계열 헤지펀드의 자산이 25%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펀드는 우량자산인 회사채 시장에 주로 투자하던 펀드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위험을 정교하게 분산시킬 목적으로 등장한 최첨단 금융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위기를 확대·전파하는 꼴”이라며 “2000년대 이후 신용파생상품 규모가 20조달러에 이를 만큼 성장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의 파장이 예상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동성 주기의 방향이 다르다=7월 중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 규모는 모두 980억달러로, 2004년 8월 이후 가장 작았다.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를 빼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치 기사에서 “유동성 경고의 벨이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크게 줄어든 것도 문제다. 86년 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미국 정부는 1천억달러 이상의 공적 자금을 쏟아부었다. 98년 당시엔 대형 은행 16곳이 350억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에 나섰다. 특히 과거 두 위기는 모두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여지가 컸던 기간에 벌어졌다. 금융시장이 빠르게 냉각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셈이다. 반면, 현재의 통화정책 환경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고유선 대우증권 거시경제팀장은 “지금은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과잉 유동성과 자산 가격 급등을 우려하고 있는 터라 당장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며 “금융시장이 부실의 틀을 털고 다시 건강을 되찾기까지는 당분간 고통스럽더라도 신용 경색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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