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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사러 가는 게 아니라 만나러 갑니다”

등록 2007-10-04 19:29수정 2007-10-05 01:52

바스티유 광장 부근에 마련된 노천시장에서 상인들과 물건을 사려는 주민들이 북적대고 있다. 대형마트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많은 파리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옷가지나 신문들도 함께 판다. 파리/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바스티유 광장 부근에 마련된 노천시장에서 상인들과 물건을 사려는 주민들이 북적대고 있다. 대형마트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많은 파리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옷가지나 신문들도 함께 판다. 파리/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중소기업청 공동기획
사람 향기 나는 시장 ②프랑스-거리의 공동체
프랑스 파리 시내, 7월혁명 기념탑이 우뚝 솟은 바스티유 광장 부근에서는 새벽 5시쯤부터 수없이 많은 불빛들이 새어나온다. 널찍한 인도로 약 1km에 걸쳐 6~8줄로 들어서 있는 가판대에서 밝히는 불빛들이다. 매주 목·일요일 아침부터 오후 3시께까지 열리는 ‘바스티유 시장’의 모습은 이렇게 펼쳐진다. 상인들은 어둠을 헤치고 과일, 생선 등이 담긴 상자를 분주히 나르며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푸른 나무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는 재주를 넘는 묘기꾼과 ‘인종차별 반대’ 유인물을 나눠주는 이들도 눈에 띈다.

모두 20개 구역으로 나뉘는 파리시에서 주말만 되면 바스티유 시장 같은 노천시장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식품시장 82개 가운데 1주일에 2~3번 열리는 노천시장은 69개, 건물을 사용하는 시장이 13개다. 각 구마다 평균 4개 이상의 시장이 있는 셈이다. 프랑스 전역에는 7000여개의 시장이 있으며 이 가운데 75%가 노천시장이다. 프랑스에서는 1960년대부터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는 기존 재래시장이나 도심 소매상인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많은 파리 시민들이 여전히 시장을 찾는다.

“시장도 공공서비스” 유통망 넘어 문화 교류장 노릇
영업시간 등 대형마트와 차별화…지자체 책임관리

시장이 파리 시민들의 삶 속에 숨쉬는 것은 시장을 ‘공공 서비스’로 여기는 프랑스 사회의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스테판 위공은 “파리의 시장은 계층이나 연령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잠시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섞일 수 있는 공동체적 가치를 가진다. 단절을 일으키는 근대성에 대한 저항”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 시장은 하나의 유통망일 뿐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 역사를 대표하는 장소다. 파리 중심가에서 만난 한 택시 운전사는 “이웃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시장에 가면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매력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시장에 들린다”고 말했다.

시장은 공유지나 지역자치단체가 소유한 건물에 들어서며 각 지자체가 직·간접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도 공공 서비스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상인들은 특정 상품을 팔기 위해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뒤 자릿세와 보험금 정도만 있으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16구에서 직접 만든 딸기잼을 팔고 있는 프랑소와 보네리크(52)는 “바스티유 시장에 장사 허가를 받으려면 보통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시청이 정하는 자릿세는 가판길이 1m당 하루 2.74유로(약 3500원)이며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변하지 않았다.

시장은 이민자들이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구실도 한다. 지자체마다 관리 방식에 약간 차이가 있는데, 파리의 대다수 노천시장은 4개 관리회사에서 나누어 관리한다. 관리회사는 받은 자릿세로 상인 모집, 천막 설치 등 전체 시장운영 업무를 맡고 시청에 수수료를 낸다. 또 시청은 연간 1000만 유로(약 130억원)가 넘는 물청소 비용을 부담한다.


정부나 지자체는 ‘시장의 보호자’ 구실도 한다. 프랑스는 1970년대 이후로 시장이나 도심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유통업체 출점을 제한하는 법안을 강화해 왔다. 현재 ‘라파린법’(1996)을 통해 매장면적이 300㎡를 넘는 소매점의 설치· 확장·변경 때에는 ‘지역상업위원회’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파리 시내에서는 대형마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노동법으로 대형마트의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위치나 영업시간에서도 시장은 대형마트와 차별성을 갖는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질 좋은 식료품이나 잡화류 같은 생필품들을 살 수 있다는 점도 시장의 존속 요인으로 꼽힌다. 6구에 사는 30대 남성은 “시장에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데 먼 곳에 위치한 대형마트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파리/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대형 마트에 없는 신선 식품이 경쟁력”

파리시 소상공업 지원역 코헨솔라

“상인과 손님들이 만나는 장소에 집이 들어섰고 도시가 만들어졌다. 파리의 역사는 시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파리 시청에서 소상공업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린 코헨-솔라(60)는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시내에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형마트가 처음 들어섰을 때 파리에서도 시장이 축소되는 현상이 있었다”며 “그러나 현재 파리 안에는 대형마트가 세개 밖에 없다. 300㎡ 이상의 소매점을 설립하려면 특별히 허가를 받게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리시 소상공업 지원역 코헨솔라
파리시 소상공업 지원역 코헨솔라
또 “파리가 워낙 작고 쓸만한 땅이 없어서 아예 큰 매장을 열겠다고 하는 요구가 없다”고도 전했다.

상품구성을 보더라도 시장과 대형마트는 정면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코헨-솔라는 “시장은 열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신선한 야채와 과일 등을 바로바로 공급하면서 대형마트와 구분되는 경쟁력을 가지는 품목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시장 설립 요구가 많다. 그는 “15구 지역에서 시장 설립에 대한 요구가 있어서 다음주에 설립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한다”며 “프랑스식 시장 모델을 미국 시카고에 수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파리/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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