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상수지 적자액 추이 / 해외 투자자의 미국 장기채권 순매수액 추이
미국 주도 흔들리며 글로벌자금 이탈 가속
달러추락은 유럽·아시아로 중심분산 ‘신호’
달러추락은 유럽·아시아로 중심분산 ‘신호’
‘익숙한 것’과의 헤어짐엔 으레 두려움과 혼란이 뒤따른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경제의 기본 뼈대를 이뤄왔던 돈과 재화의 흐름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 경제가 한동안 익숙했던 ‘불균형’ 상태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균형을 찾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그만큼 세계 경제가 당분간 안개 속을 헤맬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세계 경제는 그간의 ‘안정적인 불균형’에서 ‘불안정한 균형’으로 이동중에 있다는 것이다.
■ ‘불균형’ 해소 시작돼=현재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만드는 뇌관은 단연 달러 약세다. 지난 6일(현지시각) 달러는 1유로당 1.4555달러에 거래돼 달러 가치가 가장 높았던 시점(2000년 10월25일, 1유로=0.8270달러)에 견줘 무려 43.2%나 곤두박질쳤다.
달러화 약세는 그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불균형’ 구조를 흔들고 있다. 불균형 구조란, 미국은 자국 통화인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수입(=미국 내 소비)을 늘리고, 이 덕에 아시아 국가들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거두고, 아시아 국가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 매입 자금으로 쓰여 결국엔 미국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메커니즘을 말한다. 2000년대 이후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과 미국의 소비 호황은 모두 이런 불균형이 낳은 ‘쌍생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상품 수출과 대미 투자가 방향을 틀고 있다. 해마다 빠르게 늘어나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모두 8115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15%나 됐다.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적자액 비율은 97년 1.70%에서 10년 사이 4배 가까이 불어났다. 하지만 올 상반기 경상수지 적자 폭은 3879억달러로, 지난해 상반기(4062억달러)보다 183억달러(4.5%) 줄었다.
미국의 돈줄 노릇을 하던 아시아 국가들의 투자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 재무부 통계를 보면, 국외 투자자의 미국 장기채권 순매수 규모는 올 4월(1701억달러)을 정점으로 내림세로 돌아섰고, 지난 8월엔 349억달러 순매도를 보였다. 미국에 투자된 돈보다 미국을 떠난 돈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달러 가치 하락으로 미국의 교역 조건이 개선돼 경상수지 적자 폭은 줄어들고, 달러 가치의 추락을 예상한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 이외의 자산으로 투자처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 불안정성은 더 커져=전문가들은 최근의 달러 약세가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불러오고 있지만,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평가한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지난 2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달러 약세가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치유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방향 전환을 했다고 해서 균형점을 찾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조정 비용’을 누가 떠안아야 할지를 놓고 새로운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탓이다. 하준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미국 가계는 소비를 줄여야 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 축소를 감내해야할 텐데, 그간 익숙했던 상태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의 미국-중국 관계가 1980년대 플라자 합의 당시의 미국-일본 관계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도 균형을 찾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더 커지는 시련의 세월이 올 수 있다고 내다본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한편에서는 기축 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데, 딱히 이렇다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세계 경제 전체의 조정 기능이 많이 약해지다보니 아시아 신흥 시장과 산유국 등 뉴플레이어들과 미국·유럽 등 기존 세력 사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 꽤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때문에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더 커지는 시련의 세월이 올 수 있다고 내다본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한편에서는 기축 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데, 딱히 이렇다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세계 경제 전체의 조정 기능이 많이 약해지다보니 아시아 신흥 시장과 산유국 등 뉴플레이어들과 미국·유럽 등 기존 세력 사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 꽤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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