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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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법을 만들었는데, 시행하려니까 적용 대상이 없어진다면?”
‘인터넷텔레비전(IPTV) 법’ 제정 일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의 ‘고민’이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이란 전제를 달면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힘줘 말했다. 오래 전부터 이 일에 참여해 와 인터넷텔레비전 기술의 세계적인 흐름과 국내 상황을 꿰뚫고 있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케이티(KT)는 ‘세계 최초’ 방식의 인터넷텔레비전 서비스를 고집하고 있다. 여기서 세계 최초란 초고속인터넷 업체가 실시간 방송까지 직접 하겠다는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정통부와 케이티는 실시간 방송 기능을 포함한 인터넷텔레비전에 ‘뉴미디어’라는 이름을 달아 기존 규제를 피하려고 하고 있다.
법 제정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많은 업체들이 이미 인터넷텔레비전 서비스를 하고 있다. 정통부와 케이티는 이를 인터넷텔레비전을 뉴미디어로 봐주지 못하는 방송위원회와 방송업체들의 ‘무지’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케이티의 ‘이기심’ 탓도 있어 보인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인터넷텔레비전을 방송 업체의 실시간 방송과 초고속인터넷 업체의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결합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 가정의 텔레비전 앞에 놓인 ‘셋톱박스’에서 방송 업체의 실시간 방송과 초고속인터넷 업체의 주문형비디오 서비스를 재료로 인터넷텔레비전을 만들어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요금은 셋톱박스 ‘주인’이 받아 나눈다. 이용자가 초고속인터넷 업체 셋톱박스를 쓰면, 초고속인터넷 업체가 요금을 받아 방송 업체에게 실시간 방송 콘텐츠를 제공한 대가를 지불한다. 셋톱박스가 방송 업체 것이면, 방송 업체가 요금을 받아 초고속인터넷 업체에게 주문형비디오 서비스 제공 대가를 준다. 초고속인터넷 업계와 방송 업계가 싸울 이유가 없다.
케이티는 이에대해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터넷텔레비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시간 방송까지 직접 할 수 있는 기술을 두고 왜 ‘구식’으로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인터넷텔레비전 법을 보면, 케이티가 원하는 대로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케이티가 인터넷텔레비전 사업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방송사들이 딴죽을 걸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성방송 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는 지상파 재전송 허가를 받기까지 3년이 걸렸고, 티유미디어는 서비스를 시작한 뒤 3년이 지나도록 지상파를 재전송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케이티가 인터넷텔레비전 매출 발생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메가티브이’와 케이블방송·스카이라이프를 셋톱박스에서 묶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다면 어찌될까. 인터넷텔레비전 법 제정을 놓고 논란을 벌이던 정부, 국회, 학계 사람들과 법 모두 ‘닭 쫓던 개 하늘 처다보는’ 처지로 몰릴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통부와 방송위원회의 기구 통합 문제가 어떤 형태로던 결론이 나면, 케이티가 ‘시장 상황이 바뀌었다’ 내지 ‘방송업체들과 상생’ 명분을 내세워 이렇게 하지 말란 법도 없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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