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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텔레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다른 업체 것으로 바꾸기 위해 해지 신청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로텔레콤은 해지 신청이 접수되는 즉시 해당 가입자를 대상으로 ‘해지 방어’ 작전에 돌입한다. 먼저 왜 해지를 하려고 하는지 묻는다. 요금이 비싸다고 하면 요금을 깎아주거나 부가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겠다고 하고, 품질이 불만이라고 하면 회선을 손봐 속도를 빠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서 해지 신청 철회를 권한다. 길게는 7일 가까이 해지 처리를 미루면서 설득한다.
그래도 해지하겠다고 고집하면, 그 가입자를 유치한 고객센터(대리점)에 맡겨 2차 해지 방어 작전을 편다. 하나로텔레콤 내부에서는 이를 ‘윈백’이라고 부른다. 이때 가입자에게는 해지 처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시 이용정지’ 상태로 둔다. 그리고 고객센터들에게 ‘꼭’ 방어할 것을 요구한다. 해지 방어의 ‘성공 지표’까지 내려준다. 50%를 목표로 준다. 지표는 고객센터 평가 때 가입자 유치 실적만큼이나 중요한 점수를 차지한다.
2차 해지 방어 때는 더욱 파격적인 ‘미끼’가 내걸린다. 3개월 안팎의 무료 이용권이나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현금이 건네지기도 한다. 하나로텔레콤은 고객센터들에 ‘선납권’을 팔아 해지 방어 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선납권이란 초고속인터넷 한 달 이용권과 같은 것이다. 고객센터들은 말로는 재가입을 권하지만, 실제로는 해지 방어다. 이런 상태가 길게는 5개월까지 가기도 한다.
인천에서 하나로텔레콤 고객센터를 운영하다 최근 그만둔 안아무개씨의 얘기(〈한겨레〉 11월17일치 2면)를 토대로 하나로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 해지 절차를 재구성해봤다. 하나로텔레콤 쪽에서 보면, 경쟁업체의 요금할인이나 경품 미끼에 끌려 즉흥적으로 해지 신청을 한 가입자를 붙잡는 노력이라고 강변할 수 있다. 하지만 요금이나 품질에 불만을 느껴 다른 업체로 옮기려고 작심한 이용자 쪽에서 보면 질릴 수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안씨의 폭로 내용에 대해 “실적에 눈 먼 일부 고객센터의 행동”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안씨는 ‘조직적’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문득 가입자가 해지 신청을 하기 전에 요금 할인이나 경품 제공 같은 해지 방어 노력을 하면 가입자도 유지되고 고객 만족도도 높아져 좋을텐데 왜 꼭 해지 신청을 한 뒤에 난리를 피워 비난을 받나 하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이용자 쪽에서 보면, 이를 요금 부담을 줄이고 경품까지 챙길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겠다 싶다. 1~2년에 한번씩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점을 이용해 해지 신청을 하는 것이다. 사업자가 요금을 깎아주거나 경품을 주겠다며 해지 신청을 철회하라고 하면 다 챙긴 뒤 못이기는 척 철회하면 된다.
김재섭 기자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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