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경쟁정책 당국 비교
“규제 완화가 대세” 대기업집단제 폐지·공정위 위상 격하 압박
전문가들 “당국은 심판관…기업책임 강화하는 게 세계적 흐름”
전문가들 “당국은 심판관…기업책임 강화하는 게 세계적 흐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방침을 밝힌 뒤 경제단체에서 각종 규제 철폐 또는 완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인수위에선 ‘규제완화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유로,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 조직을 슬림화하고 공정위원장을 현행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낮추려는 기류까지 감지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쟁당국과 시장에 대한 사후규율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최근의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지적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9일 인수위에 정책제언을 전달하며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하고 순환출자 금지 같은 제도를 지양할 것”을 건의했다.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공정위가 매해 4월 자산규모와 지분구조 등을 분석해 각종 규제를 적용할 기업집단의 계열사 현황을 지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정되면 계열사간 상호출자·채무보증이 금지되고, 금융 및 보험사의 타 계열사 의결권이 20%(4월부터 15%)로 제한되며, 비상장사 공시의무와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의무가 생긴다. 김상열 대한상의 부회장은 “뭐든지 글로벌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부작용이 있다면 다른 기준으로 해결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공정거래법에 따른 규율을 개별법인 단위로만 받겠다는 게 재계의 목적”이라며 “이는 엄연히 종속-지배관계가 있는 기업집단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기업집단에 지우는 의무들은 불공정행위와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집단 지정제 폐지 요구는) 아예 최소한의 감시조차 받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정위의 위상도 논란거리다. 김관보 가톨릭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 경쟁의 심판자이면서 시장질서의 파수꾼”이라며 “선진국에서도 경쟁당국이 기능과 위상이 약화되면 어김없이 담합이 심각하게 나타나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소비자 이익을 해쳤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연합·일본 등 선진국은 경쟁당국을 장관급의 독립규제위원회로 편제하고 있다. ‘민민규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간 담합이나 사업자단체의 규제가 심각했던 일본의 경우, 2001년 행정조직을 대폭 개편하면서도 공정위를 ‘시장질서의 보루’라며 되레 독립성과 권한을 크게 강화시켜줬다.
이에 힘입어 일본 공정위의 직원규모는 2002년 600여명에서 올해 800여명까지 늘어났고, 유럽연합도 지난 2006년 카르텔전담국, 기획·지원국, 수석경제학자팀 같은 기간조직을 보강하는 등 규모와 예산을 늘리는 추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 당선인의 공약대로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으로 전환하려면 동시에 기업집단법을 제정하고 이중대표소송제도, 회사기회유용 금지 등 사후규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콘쩨른(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일찍부터 도입했고 이탈리아도 지난 2004년 회사법에 다중대표소송제도 등을 도입해 기업집단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경쟁당국의 강화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와 보험소비자연맹은 9일 성명서를 내어 “공정위를 축소 또는 폐지하려는 것은 자칫 대기업만 혜택을 주고 전국민 소비자가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영희 조일준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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