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롯데·한화 등 “연결 짓지 말아달라”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이 총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카드를 들고나옴에 따라, 삼성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재벌들 역시 쇄신안의 불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의 쇄신안 발표가 총수 1인의 절대 권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무소불위의 총괄조직 체제 종식의 신호탄이 될지가 관심거리다.
현재 주요 재벌 가운데 에스케이와 엘지, 지에스 등을 제외한 대부분 재벌들은 여전히 법적 근거가 없는 비서실(또는 기획실) 조직이 그룹 총수의 뜻을 받들어 그룹 경영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1실 3담당 7팀으로 이뤄진 기획조정실이 맡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 명목상으로는 롯데쇼핑에 속한 정책본부가 비서실, 홍보실, 인사담당 등을 두고 사실상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상태다. 한화그룹은 2006년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고 경영기획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에스케이와 엘지그룹은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그룹 총괄기능을 떠넘긴 경우에 속한다. 엘지그룹의 경우, 한때 총수를 보좌하는 기획조정실 인력이 300명을 넘기도 했으나, 2003년3월 지주회사인 (주)엘지를 출범시켰다. (주)엘지는 산하에 인사·재경·경영관리·브랜드관리·법무 등 5개 팀이 자회사의 성과관리와 브랜드 관리 등을 나눠 맡고 있다. 에스케이그룹도 한때 경영기획실과 구조조정추진본부가 전면에 나서 그룹 경영을 총괄해 왔으나 지난해 7월 지주회사인 에스케이(주)를 공식 출범시켜 사업자회사에 대한 투자를 전담토록 하고 각 사업자회사들은 독립경영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총수를 보좌하는 총괄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그룹들은 삼성의 쇄신안 발표가 가져올 파장을 애써 차단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빠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선 그룹 전체의 경영을 총괄하는 기능이 더욱 필요한 거 아니냐”며, “비자금 사태의 후폭풍 와중에 터져나온 삼성의 변화를 다른 그룹에도 곧바로 끌어들이는 건 좀 무리”라고 말했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 전환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삼성과 관련한 파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한 임원도 “오늘날의 삼성을 낳은 비밀은 강력한 오너십인데, 이 회장의 급작스런 사퇴가 투자결정 등 경영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된다”며 “오너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를 곧장 다른 대기업으로 연결짓는 건 곤란하다”는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법적 지위가 모호한 비공식 창구로 그룹경영이 좌지우지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터라, 재벌그룹들에 몰아치는 변화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주회사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그룹 총수의 실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지주회사는 재벌개혁과 무관한 것이다. 지주회사를 만든다고 해도 비자금이나 총수-가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형식적인 변화보다는 실제적으로 총수 1인 지배의 고리를 끊을 묘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우성 이형섭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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