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평정, 7년전 소액연체정보 금융사들에 유통
사용해서는 안 되는 7년이 지난 소액 연체정보를 신용정보회사가 금융회사들에 유통시켜 2만7천여명이 ‘장기 채무 불이행자’로 분류돼 금융거래가 차단되는 일이 일어났다.
작은 기업을 경영하는 임성진(30)씨는 9일 오전 롯데카드를 쓰려다 “장기 채무 불이행으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임씨는 이 카드사를 통해 연합엠피라는 회사에 의해 ‘장기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합엠피는 2001년 파산한 무선호출회사 해피텔레콤의 채권을 지난 5월30일 인수한 채권추심회사다. 임씨는 이 회사를 찾아가 97년 11월부터 98년 1월까지 3만9천원의 호출기 요금이 연체료가 붙어 8만2천원이 돼 있는 걸 확인했다. 임씨는 “10년간 전화나 우편으로 전혀 독촉 안내를 받지 못했고, 10년 전 영수증을 확인할 길도 없다”고 항의했고, 연합엠피는 임씨의 ‘연체 기록’을 삭제했다.
임씨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무려 2만7천여명에 이른다. 연합엠피는 지난 7일 한국신용평가정보(한신평정)에 2만7천여명의 ‘장기 채무 불이행자’ 정보를 올렸고, 한신평정은 사실 확인 없이 이를 9일 각 금융회사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신용정보업 감독규정에는 발생일로부터 7년이 지난 신용불량 정보는 신용정보업자에게 등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2만7천명 대부분은 수년간 연체료를 포함해도 10만원이 안 되는 금액이고, 그동안 연체 사실에 대한 독촉을 전화나 우편으로 받지 못한 채 하루아침에 ‘장기 채무 불이행자’로 등재됐다는 불만을 다음 아고라에 토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연합엠피가 통보한 금액을 입금하는가 하면, 신용등급을 확인하기 위해 유료인 신용조회 서비스를 구매했다. 연합엠피는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고객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롯데카드에도 임씨와 같은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롯데카드는 9일 오전에 1천여명에게 ‘장기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카드사용 정지’ 문자를 보냈다가, 이날 오후 한신평정으로부터 잘못된 개인 신용정보가 제공됐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렸다.
이에 대해 한신평정은 <한겨레>에 “연합엠피가 해피텔레콤의 채권을 인수한 날을 ‘채권 발생일’로 잘못 등록한 것을 걸러내지 못해 개인들의 신용정보가 잘못 유통되고 고객 피해가 발생했다”며 “신용정보회사로 있을 수 없는 실수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한신평정은 9일 오전 이용자들의 항의가 쏟아지자 이날 오후 관련 정보를 모두 삭제했고, 신용등급 하락 등의 불이익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 신용정보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신용정보회사에 의해 통제 없이 유통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실질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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