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항소법원 “저작권 표시 어긴 무단이용 금지”
“돈을 벌 목적으로 개발해 권리를 독점하려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가를 전제로 한 계약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 위반이라 볼 수 없다.”(1심 법원)
“금전 확보가 경제적 동기의 전부는 아니다. 개발자들이 자신의 평판을 위해, 또는 예술과 과학 등 창작 환경에 기여하기 위해 저작물을 공개한 목적도 중요한 경제적 동기이다. ”(항소심 법원)
독점적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저작자를 밝히는 조건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공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소프트웨어의 ‘경제적 동기’는 어디까지일까?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지난달 13일 저작권과 관련해 내린 판결에서 ‘자유 라이선스 운동’에 관한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미 항소법원은 열차제어 소프트웨어를 자유 라이선스로 공개한 로버트 제이콥슨이 “저작권 관련 표시 규정을 어기고 상업적으로 사용했다”며 매튜 캐처를 고소한 2심 판결에서 제이콥슨의 손을 들어줬다. 애초 1심 법원은 “저작권자 표시규정을 위반한 것은 저작권 침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부수적 약정을 어긴 것에 불과하다”며, 사전 처분을 요구한 제이콥슨의 신청을 각하했다.
항소법원은 자유 라이선스의 사용을 ‘상호간의 계약’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용을 허락받기 위해서 따라야만 되는 ‘조건’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오픈 소스 저작권자는 저작권의 보유 사실과 이용자의 무단이용 사실만 입증하면 되게 돼, 권리 주장이 쉬워졌다.
또 하나의 뜻깊은 진전은 ‘경제적 동기’를 폭넓게 인정해, 지식 공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점이다. 미국 법원은 “자유 라이선스가 금전 거래를 수반하지 않지만, 창작물을 누구나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개방하는 목적의 밑바닥에는 사회적 기여라는 경제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에 판결이 내려진 저작권 종류는 오픈소스 라이선스의 한 종류인 ‘기술적 라이선스(artistic license)’다. 판결문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CCL)만이 아니라 다양한 자유 라이선스를 언급하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저작권법 권위자인 로렌스 레식 스탠퍼드대 법대 교수는 비비시(BBC)와 나눈 인터뷰에서 “자유소프트웨어 사용조건을 위반하는 순간 ‘사용허가’는 사라지고 바로 저작권 위반이 된다”며 “이번 판결은 오픈 소스 운동한테 매우 중요한 승리”이라고 말했다. 비비시는 이번 판결을 오픈 소스운동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라고 보도했다.
한국에서 CCL 등 자유 라이선스 운동을 펼쳐오고 있는 윤종수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장은 판결에 대해 “미국법과 국내법에 약간 차이가 있어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자유 라이선스에 관한 판결이 없는 국내에서 좋은 참고사례”라며 “오픈 소스 관련 판결에서 계약의 효력을 다루는 문제가 처음 나왔다는 것과, 이를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