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보따리’ 뜯어 보니?
‘추가 투자 7000억원, 추가 신규고용 8500명.’ 5개월 만에 이명박 대통령과 얼굴을 맞댄 재계가 풀어놓은 새로운 보따리의 내용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알맹이가 빠져 있어 실제 투자와 고용 집행이 계획대로 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18일 재계가 청와대 회의에서 밝힌 올해 30대 그룹의 신규채용 규모와 연간 투자액은 각각 8만5540명과 96조2761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 4월28일 열린 제1차 민관 합동회의에서 내놓았던 목표치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1차 회의 당시 재계는 올해 신규채용 규모를 7만7500명, 연간 투자액을 95조6000억원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경제의 둔화세가 점차 뚜렷해지는 가운데, 재계는 오히려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미 나온 얘기를 되풀이하거나 앞으로 몇년에 걸쳐 진행될 막연한 투자 의지만을 내비친 대목도 있다. 삼성그룹은 올해 27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고졸 신입사원을 포함해 2만500명을 뽑기로 했는데, 이는 지난 4월 밝힌 계획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올해 들어 8월까지 5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 데 이어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연료전지차 등 친환경 차량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2조4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장기 투자계획이다. 포스코, 한화 등도 설비투자를 크게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역시 내년 이후까지로 이어지는 투자계획이다.
고용도 목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 11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고용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했지만 딱히 올해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청년실업 해소대책의 하나로, 전경련 회장단 소속 회사들이 시행 중인 대학생 인턴 규모를 현재의 6000명에서 1만명 수준으로 크게 늘리기로 하고, 이달 24일에 500여개의 대·중소기업이 참여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채용박람회’도 연다는 계획을 밝혔을 뿐이다.
이런 탓에 이날 재계가 밝힌 목표치는 지난 8월 단행된 특별사면에서 재벌 총수들이 대거 사면대상에 포함된 뒤 정부와 여권이 재계가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데 미온적이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 데 대해, 추가 투자와 추가 고용확대 카드로 화답하고 나선 성격도 짙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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