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통신사 등 관리·감독 책임 불구
“무단 신용조회 등은 판매점·모집인 탓”
“무단 신용조회 등은 판매점·모집인 탓”
#1 반미선(46)씨는 연체 사실도 없는데 최근 한 금융기관에서 신용등급이 많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반씨는 이 금융기관 직원이 “왜 이렇게 신용조회를 많이 했느냐”며 과다 신용조회 사실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확인해보니, 반씨가 모르는 3건의 신용조회가 이뤄져 있었다. 신한카드 대구지점 명의로 무단 신용조회가 이뤄진 것이다. 반씨는 2년 전 가입을 권하는 모집인 권유에 따라 신용조회에 한 번 동의한 적이 있지만, 이후로는 동의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2 김용석(34)씨는 지난 5월 와이브로를 케이티(KT) 서울 가락지점에서 신청했다. 준다는 사은품 가방이 석 달 넘게 무소식이기에 알아보니, 오래전에 배송이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케이티 가락지점의 한 직원이 김씨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별도의 계정을 만들고 사은품을 자신의 집으로 배달시킨 것이다. 김씨는 항의했지만, 케이티 쪽에서는 지점의 문제라며, 화해를 종용했다. 책임 있는 사과를 받지 못한 김씨는 이달 초 이 회사 가락지점을 명의도용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3 정희원(43)씨는 최근 자녀에게 에스케이텔레콤 휴대전화에 가입을 시켜줬다. 이 회사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입계약서 원본을 고객에게 돌려주고, 전자 파일을 본사 서버에 보관해 권한을 가진 사람만 접근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정씨가 돌려받은 계약서는 원본이 아니라 ‘복사 금지’라는 도장이 선명한 복사본이었다. 지난달 에스케이티(SKT) 가입자 정보 수백 건이 인터넷에 노출된 사건도 영업 현장에서 별도로 고객정보를 수집·활용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잇단 개인정보 노출로 기업들의 보안 의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영업 현장에서 개인정보가 불법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통신·이동통신 분야 대표기업들의 최근 사례에서 보듯, 영업 현장에서 고객정보는 소홀히 다뤄지기 일쑤다. 피해 고객들은 브랜드를 믿고 영업점을 통해 개인정보를 제공했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다.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임아무개씨는 “오래된 판매점이 갖고 있는 고객 정보의 규모는 엄청나다”며 “수천~수만 건의 가입자 정보를 관리하며, 번호이동이나 단말기 교환 마케팅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모두 불법적 이용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본사 차원의 캠페인만이 아니라, 일선 영업조직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감독, 적발시 징계가 뒤따라야 하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문제가 불거져도 근본 대책보다 “판매점·모집인이 생계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영업점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문제가 터져도 경영적 위기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 아니라고 여기는 기업들의 인식이 문제”라며 “기업이 영업점 차원의 불법행위로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런 일이 빈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과 신용정보이용보호법은 서비스 제공자가 개인정보 취급 위탁 계약을 맺은 업체를 관리·감독하도록 하고, 손해 발생 때에도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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