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대출 죄며 기업들 돈 가뭄
생산 감소→고용 악화 악순환 뚜렷
생산 감소→고용 악화 악순환 뚜렷
“지난 6개월 동안 주문이 급격하게 줄었다.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
2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미국 부품기업 테크니컬 머티리얼스의 앨 루브라노 사장은 <에이피>(AP) 통신에 미국 제조업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했다.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 낸 깊은 상처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구제금융 법안의 미국 하원 통과 여부에 상관 없이, 시장은 이 법안으로 경기후퇴를 피하기엔 역부족이란 걸 체감하고 있다. 구제금융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2일(현지시각)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349(3.22%)나 급락하며 이틀째 하락세를 보였다.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도 “구제금융안이 하원에서 통과되겠지만, 반창고(미봉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우지수는 미 하원 통과를 앞둔 3일 오전(현지시각)서야 1.85% 상승세로 출발했다.
신용경색은 점점 드세게 기업들의 목을 죄고 있다. 석 달짜리 달러 대출 리보금리(런던 은행간 대출금리)는 2일 나흘 연속 상승하며 4.21%까지 치솟았다고 <블룸버그 뉴스>가 전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주 미국의 기업어음(CP) 발행액이 949억달러(5.6%)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짐 프레스 크라이슬러 사장은 파리모터쇼에서 “신용 창구가 닫혀 버렸다”고 말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는 2일 뉴욕에서 열린 주미 한국상공회의소 주최 세미나에서 “금융기관이 일반 고객은 물론 은행끼리도 돈을 빌려주지 않고 현금을 쌓아두는 극심한 신용경색이 빚어지고 있다”며 “우량기업인 에이티앤티(AT&T)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신용 경색 → 소비 위축 → 생산 감소 → 고용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조짐도 뚜렷하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8월 공장 주문이 앞 달에 비해 4%포인트 떨어져 2년 사이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 노동부는 9월 한 달 동안 5년 만에 가장 큰 폭인 15만9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3일 밝혔다. 미국의 9월 실업률은 전 달에 이어 6.1%를 기록했다.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의 이코노미스트 라이언 스위트는 <블룸버그 뉴스>에 “금융위기로 경제가 타격을 받아 경기침체로 들어섰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경기 후퇴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수출에도 본격적인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의 수출은 액수로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7%나 늘었으나, 미국(2.2%) 등 선진국 쪽 수출은 4.9% 증가에 머물렀다. 특히 우리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쪽은 수출이 9월 들어 20일까지 7.3% 증가에 그쳤다. 대중국 수출은 지난 7월에는 30.2%, 8월에는 20.7% 늘어난 바 있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9월 수출은 각각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18.4% 줄었다.
내수경기 부진도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자동차공업협회 집계 결과 9월 들어 15일까지 국산 자동차 내수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 줄고, 한국석유공사 집계 결과 휘발유 판매량이 18.4% 줄어드는 등 소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민희 정남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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