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업체 경쟁력 높이기 위한 정부 보조금 제한
위반 판정 불투명, 친환경차 개발 지원은 예외탓
“보조금 판정 안나도 우리업체 미칠영향 검토해야”
위반 판정 불투명, 친환경차 개발 지원은 예외탓
“보조금 판정 안나도 우리업체 미칠영향 검토해야”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가 경기침체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자국 자동차 업체들을 위해 잇따라 쏟아내는 특별지원책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금지 규정에 어긋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선진국 정부가 그동안 개발도상국 등에게 ‘압박용 무기’로 즐겨 사용하던 규정을 스스로 위반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시간주를 포함한 미국 6개 주지사들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7천억달러 규모의 연방 구제금융 자금 일부가 자동차 업체들에도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서한을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게 보냈다.
앞서 9월26일에는 미국 자동차 ‘빅3’ 업체에 250억달러의 저리 융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지난달 30일 역내 자동차 업체 지원을 위해 400억유로 규모의 유럽투자은행(EIB) 특별융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런 움직임은 모두, 한 나라의 핵심 산업기술이 집약돼 흔히 ‘제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산업이 불황을 겪으면 실물경제 침체를 가속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처들은 자유무역질서의 뼈대를 이루는 세계무역기구의 보조금 금지 규정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현행 세계무역기구 협정문 부속서 ‘보조금’ 조항은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자금지원·대출에 관여하거나 세제혜택 등을 주는 것을 보조금으로 정의(제1항)하고 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국제통상법)는 “보조금 조항은 특히 제2항에서 특정 기업과 특정 산업을 지정해 보조금을 줄 수 없다는 ‘특정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며 “이번 경우는 자동차 업체를 특정해 지원하는 것으로 여기에 해당돼, 규정을 위반했다고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 말 채권은행단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리기 위해 1조9천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뼈대로 한 채무조정안을 확정하자, 미국과 유럽연합은 “채권은행단의 자체 결정이 아니라 정부의 실질적 입김이 들어간 조처”라며 하이닉스반도체의 반도체 디램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처들이 ‘보조금 규정 위반’으로 최종 판정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가 자금지원 목적으로 ‘친환경 차량 개발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탓이다. 연구·개발 목적의 자금지원은 규정상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보조금에 해당한다. 또, 세계무역기구로부터 ‘보조금’ 최종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이들 나라 정부의 조처들로 인해 우리 업체들의 이익이 심각하게 손상됐다는 실질적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 2005년 유럽연합은 우리 정부가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출자전환과 조세감면 등의 정책을 펴자 곧장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지만, 우리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 따른 실질적 피해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패소한 전례가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과 유럽의 이번 조처는 특정 기업에 혜택이 돌아간다고 볼 수 있어 세계무역기구의 보조금 금지 조항 대상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최종적으로 ‘보조금’ 판정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부는 이번 조처가 우리 업체들에 미칠 영향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많다는 경고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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