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컴퓨터 20년 (※표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대주주 프라임개발 “외국계기업에 안팔겠다”
‘국민벤처’로 잘나갔지만 불안한 경영으로 ‘흔들’
‘국민벤처’로 잘나갔지만 불안한 경영으로 ‘흔들’
“어서 새 주인이 결정돼 쓸데없는 신경 안쓰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6년 만에 또다시 ‘매물’로 나온 한글과컴퓨터(한컴) 한 직원의 말이다. 지난해 백종진 전 사장이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후 김수진 대표이사 체제에서 안정을 찾아가던 중에 최대주주인 프라임개발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한컴 매각 의사를 밝힌 탓에 한컴 230여 직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김수진 대표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최대주주가 외국계 기업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단순투자자에게는 팔지 않는다고 알려왔다”며 “한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도 매각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프라임개발 등 프라임그룹은 한컴의 지분 29%를 소유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에 이를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안철수연구소의 V3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이지만, ‘한글 20년’은 굴곡의 역사였다. 한때 ‘국민 벤처’라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사업에 잇따라 실패해 창업자 이찬진 사장이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벤처업계와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한글지키기’와 구매운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현재 한컴오피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다. 나머지 80%는 엠에스 오피스가 차지하고 있다. 20%라는 수치는 엠에스에 맞서 자국 시장을 그나마 지키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성과다. 하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국민 상당수가 한컴의 프로그램을 쓰고 있지만, 한컴의 매출 비중에서 ‘개인 부문’은 1%도 안된다. 98%가 기업·교육·공공 부문이다. 한컴은 개인용 시장 대신 오피스와 모바일용 웹오피스 프로그램 등 기업용 사무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려 수익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6년 연속 흑자를 이뤄내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웹오피스인 씽크프리를 통해 모바일을 겨냥한 전략은 올해 하반기 이후 성과가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컴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 20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생존의 길을 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과는 불안한 토대에 서 있다. 부동산개발회사 프라임그룹은 6년전 한컴을 인수할 때 ‘머니게임 아니냐’는 항간의 의혹에 맞서 “한컴을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 선과 같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지주회사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기업 내용이 개선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이번 매각 추진은 소프트웨어산업과 거리가 먼 자본이 긴 안목으로 기업을 키워나갈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사례다.
안철수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한컴이나 엔에이치엔의 검색업체 ‘첫눈’ 인수 등에서 보듯 기술력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큰 자본에 인수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분명한 기업이 주인으로 되길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프라임개발의 한 임원은 19일 “현재 한컴 인수 의사를 표시하는 곳들이 여럿 있다”며 “우리가 제시한 기준을 지키면서 매각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외국계 기업이나 사모펀드 대신 자본력이 있는 게임회사와 인터넷포털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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