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가격의 대표 지표로 군림하고 있는 서부텍사스 원유(WTI)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서부텍사스 원유의 하루 생산량은 40만배럴로 전 세계 생산량 8500만배럴에 견주면 0.5%에 불과하다. 또 미국 시장 밖에서는 쓰이지 않고 송유관을 통해서만 운송돼 공급 지역도 제한적이다. 때문에 국제 지표로 적합하냐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서부텍사스 원유는 질적으로 떨어지는 브렌트·두바이 원유에 견줘 배럴당 10달러 가까이 낮아졌다. 서부텍사스 원유 수요가 몰려 있는 미국 오클라호마 커싱 저장소의 원유 재고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 2월 보고서에서 “전 세계 유가 동향보다 미국의 국지적인 원유 재고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시장연구실장은 “물량이 적어 투기자본에도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텍사스 원유의 대표성 문제는 두바이 원유를 쓰는 우리나라 정유업체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선물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 원유의 가격이 전 세계 원유 가격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서부텍사스 원유가 실제 시장과 반대로 움직이면 가격 왜곡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세계적인 에너지정보 제공업체 ‘플래츠’는 지난달 아예 서부텍사스 원유를 대체할 새로운 원유가격 지표를 제시했다. 미국 멕시코만에서 나는 마스·서던그린캐년·포세이돈·선더호스 등 4개 유종의 가격을 묶는 ‘미국원유지표’(ACM: Americas Crude marker)를 만든 것이다. 4개 유종의 하루 생산량은 83만5천배럴로 서부텍사스 원유의 두 배가 넘는다. 이문배 실장은 “서부텍사스 원유의 지위를 대체하기엔 역부족이지만,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이런 노력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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