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폰 판매 정책
단순고장에도 수리 대신 ‘재생품’으로 바꿔줘
광고는 영어로…앱스토어 게임 서비스 차단
소비자 불만에도 한편선 환호…시장 선택 주목
광고는 영어로…앱스토어 게임 서비스 차단
소비자 불만에도 한편선 환호…시장 선택 주목
#1 지난달 28일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이 케이티(KT)를 통해 국내 출시되자, 나온 지 한 달된 삼성전자의 ‘옴니아2’ 구매가격이 40만원대에서 20만원대로 반토막났다.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한 80여 나라에서 동일한 가격으로 팔도록 이동통신사에 요구하고 있어, 미국에서 199달러인 ‘아이폰3Gs’는 국내에서도 26만원 수준에 팔린다. 데이터 요금이 크게 떨어졌고, 안드로이드폰도 나올 예정이다. 콘텐츠업계와 소비자들은 “이통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며 ‘아이폰 효과’에 환호를 보냈다.
#2 아이폰의 사후서비스(AS)는 독특하다. 아무리 사소한 고장이라도 수리하는 대신 ‘리퍼 제품’으로 교환해준다. 리퍼(refurbished) 제품이란 외관은 새 제품이되 품질검사를 거친 재활용 부품으로 만든 ‘신품같은 재생품’이다. 보증기간인 1년이 지나 수리를 맡기면 단순 고장도 30만원 가량 주고 리퍼 제품을 받아야 한다. 케이티는 아이폰 고객에게 디자인 불만 등 단순변심은 교환이 안 된다는 동의서를 받고 있다.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횡포”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로마에서는 로마식대로’ 대신 ‘어디서나 애플식대로’인 애플이 국내 이동통신시장에서 적지않은 마찰음을 내고 있다. 글로벌 회사가 각기 다른 시장에서 일관된 기업과 제품 이미지를 유지하며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애플의 경우는 유별나다. 애플의 마케팅 방식이 익숙지 않은 국내에선 환호와 비난이 엇갈린다.
애플은 어디에서나 ‘애플식’을 요구한다. 제품을 알리는 첨병인 광고와 마케팅도 ‘현지 사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국내 아이폰 광고는 “동영상 촬영과 편집이 쉽다”는 내용의 영어광고다. 애플 본사에서 만든 내용에 한글자막만 입혔다. 아이폰은 콘텐츠장터인 앱스토어와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으로 인해 국내 통신이용환경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손 안의 컴퓨터’이지만, 국내에선 흔한 ‘동영상’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선 아이폰의 다양한 특성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지난 여름 나온 3Gs모델은 새 기능인 ‘동영상 촬영과 편집’이 마케팅 포인트다. 케이티가 광고하는 아이폰 사진은 메뉴도 영어로 되어 있다. 모두 애플의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국내 실정에 맞춰 다양한 광고와 마케팅을 펼치고 싶은 케이티로서는 답답하다. 재생품 교환이라는 사후서비스 방식에 속이 타는 것은 케이티도 마찬가지다.
이통사는 그동안 단말기 업체에 ‘이 기능을 빼고 저 기능을 보태라’는 식의 요구를 해왔지만, 아이폰에선 안통했다. 인터넷 검열국인 중국에서 무선랜이 빠진 것을 빼고, 아이폰은 전세계에서 동일한 사양으로 출시됐다. 이통사의 로고도 새길 수 없다. 아이폰 도입을 위해 애플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이통사들은 대부분 ‘굴욕적인 조건’앞에서 고민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폰 출시국가 중에서 1위 사업자가 아이폰을 먼저 들여온 경우는 거의 없다. 애플에 먼저 손을 내민 이통사는 대부분 2위 이하의 사업자로, 기존 시장을 뒤집기 위해 자존심과 기득권을 버리고 아이폰을 들여온 것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단말기 개발·공급을 넘어 유통과 판매·서비스까지 통제하며 애플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애플의 운영체제와 아이튠스·앱스토어를 통해 생태계 질서를 세우고 소비자와 파트너업체에 준수를 요구한다. 홍보는 비밀스럽고 제품 출시는 깜짝쇼에 가깝다. 출시되기 전 성능이나 디자인을 알리는 법이 없다. 이를 누설하는 직원이나 협력사는 해고나 계약 파기를 감수해야 한다. 맥북에어·아이팟·아이폰 등이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의 ‘깜짝 프레젠테이션’으로 비로소 실체가 공개되었다.
굽히지 않는 ‘애플식대로’는 실정법과도 충돌한다. 국내에선 한국형 무선인터넷 표준(WIPI) 탑재 의무화, 위치정보보호법, 게임물 등급심의 규정 등과 부닥쳤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들어 위피 의무탑재를 없앴고, 9월엔 아이폰에 위치정보보호법을 적용하지 않는 ‘특혜’를 의결했다. 애플은 게임심의 정책을 수용하지 않고, 국내에서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를 서비스하지 않고 있다. 구글이 인터넷실명제를 거부해, 유튜브의 업로드 기능을 국내에서 차단한 것과 유사하다. 애플이 한국에서 유별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도 원인이다.
‘애플식대로’는 국내 이통사가 가로막아온 다양한 소비자 편익을 가져다준 동시에 일방적인 서비스와 마케팅으로 불만을 품게 하는, 두 면을 지닌 동전이다. 아이폰은 폐쇄적이고 ‘콧대높은’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진출한 곳마다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애플이 ‘애플식대로’를 한국에서만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내 소비자들이 ‘애플식대로’에 보인 환호와 불만이 어느 쪽으로 수렴될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애플식대로’는 국내 이통사가 가로막아온 다양한 소비자 편익을 가져다준 동시에 일방적인 서비스와 마케팅으로 불만을 품게 하는, 두 면을 지닌 동전이다. 아이폰은 폐쇄적이고 ‘콧대높은’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진출한 곳마다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애플이 ‘애플식대로’를 한국에서만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내 소비자들이 ‘애플식대로’에 보인 환호와 불만이 어느 쪽으로 수렴될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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